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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은 마음으로 하는 것
06/21/21  

우리는 흔히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인연의 참된 뜻을 알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연은 인(因)과 연(緣)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은 한마디로 업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과거의 업보에 의해 오늘의 내가 모양 지어졌기 때문이죠. 우리 중생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직접적인 내적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연은 후천적 노력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먼저 전화도 하고 맛난 음식을 같이 먹는 등 서로가 노력했기 때문에 아직도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지금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인의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후천적 노력이 없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단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불법은 인연법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현상이 서로 인연이 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합니다. 이같은 존재 방식을 연기(緣起) 또는 인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기의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윤회 전생의 연자방아가 도는 것처럼, 생사고해에서 헤매며 하룻밤에도 수천 번 죽고 태어나는 괴로움을 겪는 것입니다. 이같은 인과응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연기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수행정진을 해야 합니다. 수행에는 참선, 염불, 절, 사경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염불을 평생 수행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리불아 만약 선남자 선여인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명호를 외우면 산란한 마음이 사라지고 아미타불과 여러 성중(聖衆)들이 나타나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될 것이다.” <아미타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만큼 염불의 공덕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집에서 한번 염불을 해 보십시오. 단 1초를 염불하더라도 지극정성으로 다른 생각 말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명호를 불러 보십시오. 그 1초가 바로 극락입니다. 또한 1초가 다시 1초로 거듭나면 그것이 바로 염불 삼매의 경지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10만독, 20만독을 하는 것보다 지성으로 1초를 호명하는 것이 더 공덕이 클 수 있습니다. 염불은 얼마나 하느냐보다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며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염불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불 수행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쉽게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염불입니다. 집에서 밥 할 때나 지하철을 탈 때도 한마음으로 염불을 해 보십시오.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금강같이 단단해 집니다. 입으로 소리내어 칭명 염불을 하는 것도 좋은 수행법이지만 마음속으로 칭명을 하는 것도 염불 수행의 좋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매일 아침 시간을 정해 놓고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을 해 보십시오. 생활이 달라 질 것입니다. 아침 염불을 하기 위해서 저녁에 일찍 자야 할 것이고 일찍 자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하루 일과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염불 공덕도 쌓고 스스로 생활의 변화를 가져와 매일매일 살아있는 참된 불자가 될 것입니다.

 

아미타불을 호명하면 극락에 간다고 많은 불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생인지라 그것이 극락인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관세음보살 염불을 시작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다 보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바로 연기의 도리를 깨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깨우침의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임을 관세음보살이 알려줍니다.

 

염불을 기복 신앙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염불 정진은 불자들의 지극한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불심을 더 돈독하게 하는 정토 신앙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참선과 같은 하나의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 수 없습니다.

 

설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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