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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 6. 우리가 피렌체에 온 이유
07/30/18  

무작정 들어간 보르고 안티코에는 손님이 넘쳐나고 있었다. 산토스피리토 광장을 바라보는 야외 테이블은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실내도 그렇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구석 쪽 테이블에 금방 앉을 수 있었다. 상큼하게 쇼트컷을 한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이탈리안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키안티(Chianti) 와인 ½ 캬라프(carafe), 생 수 한 병(Still Water. 유럽에서는 물을 병으로 주문해야 하는데 탄산수와 생수를 꼭 구별해 주문해야 한다), 카프레제(Caprese) 샐러드, 미트볼을 얹은 스파게티, 볶은 감자를 곁들여 제일 작은 사이즈 스테이크 하나. 신경도 쓰지 않고 메뉴도 보지 않고 그냥 불러 주었다. 너무 피곤해서 메뉴에 뭐가 있는지 살펴 보기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금새 쓰러질 것처럼 탈진해 있는 R에게 빨리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지치고 배 고플 때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먹던 익숙한 음식이 제일 좋은 법이다.

 

키안티 와인이 곧 나왔다. 풍성한 향이 피어 오르는 붉은 와인을 우리는 한 잔씩 가득 부었다.  “피렌체를 위하여!(To Firenze!)” 도착하자 마자 봉변을 당했으면서도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오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오게 된 피렌체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늑한 레스토랑의 불빛 아래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R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피렌체에 온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R은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며 정해진 예산 아래  주말마다 8개의 유럽 도시를 둘러 본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스톡홀름, 마라케시, 더블린, 암스테르담, 그리고 피렌체. 엄마가 런던에 왔을 때는 일곱 도시를 이미 둘러 보았고 피렌체만 남겨 놓고 있었는데, 피렌체는 엄마와 같이 가기로 약속 했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르네상스 미술이 도시 전체에 가득한 피렌체를 미술을 좋아하는 엄마와 같이 둘러 보면 더 알차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내게는 또 나만의 은밀한 이유가 있었다.

 

R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이유는 좀 엉뚱하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두 달 후에 R은 스물한 살 성년이 되는데 본인은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겠지만 내게는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그대로 흘려 보내기엔 너무나 아쉽고 아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곧 지나가 버릴 딸의 ‘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는데, R이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졌던 꿈은 아가씨가 된 R을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피렌체 우피찌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그림‘봄 (Primavera)’ 앞에 세워 놓고 그 ‘영원한 봄’ 앞에 선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 꿈을 딸이 스물한 살이 되기 바로 두 달 전에 드디어 실현하게 되었다.

 

보티첼리의 그림을 상상하며 다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엄마와 달리 R은 배가 고파서 눈이 쑥 들어가 있었다. 조금 더 기다린 끝에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고 우리는 피렌체에서의 첫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계획하고 들어 온 레스토랑이 아니라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와인은 부드러우면서 향기로웠고, 소박하고 신선한 이탈리아 음식은 지친 우리의 심신을 포근하고 정겹게 위로해 주었다. 정신없이 먹고 긴장이 다 풀렸는지 R은 테이블을 건너 와 내 옆에 앉아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었다. 엄마에게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그렇게 말없이 표현하는 딸의 마음을 나도 감사하게 받으며 딸의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계산서를 가지고 온 이탈리아 웨이트레스는 그런 우리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내 꿈이 미국에 가는 거에요!” 라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잘 먹고 기운을 차린 우리는 보르고 안티코를 나와 광장의 불빛을 받으며 고적하게 서 있는 산토스피리토 성당을 바라 보았다. 르네상스 건축 대가 브루넬레스키가 마무리 했다고 전해지는 성당, 그 성당 안에서 미켈란젤로가 성당의 허락 하에 사체를 해부하며 인체의 비밀을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우리는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러 숙소를 찾아 갔다. 구글 맵을 보면서 피렌체의 좁은 밤 골목을 따라가는데 놀랍게도 5분도 안 되어 숙소가 나타났다. 정말 우리 숙소는 편리한 위치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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