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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임무 '충고'(마태오 18,15-20 (가))
08/30/21  

젊은이들의 꼴불견을 보다 못해 백발의 노인이 그들을 꾸짖다가 망신을 당하거나, 교수가 학생의 잘못을 꾸짖다가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듣게 된다. 이쯤 되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간판이 떨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느니, 살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느니 하고들 격론을 벌이기도 하는가 보다. 이러한 격론이 있다는 자체도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른이 젊은이들의 잘못에 대해서 얘기해 주고, 젊은이들은 충고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사회는 건강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은 충고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충고는 소태처럼 쓰기 때문이다.

 

어떤 신자가 말을 너무 잘해서 연사로 이곳저곳에서 강연하게 되었다. 그의 말솜씨는 그야말로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 하면서도 힘차 많은 사람들이 감명받았다. 그래서 박수를 많이 받았다. 몇 년이 지난 뒤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신부님, 우리 선생님이 이상해졌어요.” “왜요?” “어디가서 강론하고 나면 우선 우리들이 잘하셨다고 말씀드려야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그는 계속 박수소리에 속고 있었다.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충고같은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교권을 문제 삼기 시작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 말았다.

 

구원 역사 속의 충고들 원죄는 따먹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한데서 시작한다. 노아의 홍수가 그랬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죽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비참하였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아브라함은 조카며느리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충고했건만 그는 무시하였다. 결과는 소금 기둥이 되었다.

 

예수님은 성서를 통해서 우리더러 회개하기를 계속 충고하신다. 하느님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하라, 제일 사랑하라, 인간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우리는 주님의 충고를 듣고 있는가?

 

구약의 전통대로라면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 공동체내에서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견책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 19,17).’ 그러나 남이 보는데서 하지 말고 단 둘이서 얘기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남들이 들으면 소문이 무성하게 퍼지고, 명예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오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말하기 쉽기 때문에 옛부터 침묵은 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남들이 듣는데 충고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나가서 입에서 냄새가 날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껄일 수도 있기에 혼자서 조용히 충고하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두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라도 그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고집을 세우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 앞에 그의 문제를 가져와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사람의 잘못을 타일러 주는 문제에 집요하게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한사람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끝장을 보려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우물안을 다 더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면으로는 한 인간의 존재가 너무도 귀하기에 그를 끝까지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공동체의 일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죄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다. 부족하기에 충고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내게 충고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나는 인간성이 시원치 않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포기한 사람이다. 남들이 나를 포기한 사람이라면 나는 불쌍한 사람이다.

 

매일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충고하시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아홉번의 칭찬 뒤에 한번의 충고라 해도 싫어하는 자세였다면 바꿀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충고하기보다는 충고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되어야 한다.

 

최기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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