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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스페인 여행기_27. 스페인 관광버스
09/13/21  

  카페 기혼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플라자 데 시벨레스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춥고 건조해서 마치 찬 바람이 뺨을 때리는 것 같은 마드리드 아침 공기 속에 한 5분쯤 기다리자 우리가 타야 할 C03 버스가 도착했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버스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우리는 편하게 좌석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플라자 데 시벨레스에서 출발해 그랑 비아를 따라 직선으로 쭉 간다. 그랑 비아는 마드리드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로 ‘스페인 브로드웨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플라자 데 시벨레스에서 시작해 1.3 킬로미터쯤 계속되며 플라자 데 에스파냐에서 끝나는데 넓은 거리에는 20세기 초 리바이벌 건축 스타일의 멋진 빌딩들이 가득하다. 과거에는 대형 호텔과 극장들이 들어서 있던 거리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상가들이 대폭 진출해 현재의 유명 쇼핑 거리로 재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드리드에 왔으니 그랑 비아 거리를 따라 쭉 걸어가 보는 것도 일정에 넣을 수 있겠지만 추운 날씨에 걷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버스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 보는 것이 내심 잘 되었다 싶었다. 우리는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랑 비아 거리 모습을 잘 살펴 보았다. 마드리드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라고 하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그리 활기찬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어딘지 모르게 약간 낡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히려 여러가지 다양한 건축 스타일의 빌딩들이 인상 깊었다. 빌딩들은 크고 높고 당당했으며 역시 마드리드 특유의 근엄하면서도 화려한 풍취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플라자 데 에스파냐 정류장에서 내렸다. 거기서 조금 걸어가면 보이는 관광회사 주소는 Calle de Ferraz 3, 28008 Madrid. 비탈길 코너에 있는 조그만 상가의 일층이었다. ‘VPT’ 라 불리는 관광회사인데 사무실은 텅텅 비었고 남자 직원만 한 명 앉아 있었다. 오늘 10시 30분 출발 톨레도 일일 관광 예약했다고 말하자 관광 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거의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우리는 얌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10시 30 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우리는 또 한 번 직원에게 물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작은 키의 청년 직원은 그제서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스 표 두 장을 우리에게 주면서 플라자 데 에스파냐에 버스가 와 있으니 그리로 가서 타라고 말했다. 아니, 버스가 왔으면 왔다고 말해 주어야지! 우리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표를 받아 들고 다시 플라자 데 에스파냐로 걸어 갔다.

 

  플라자 데 에스파냐는 공사가 진행 중인지 벽으로 다 막아 놓았는데 그 벽에는 또 낙서가 가득하다. 그 낙서 담벽 옆 길에 빨간 관광버스가 와 있었다. 춥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얼른 버스에 올라 탔는데 어디서 왔는지 이미 사람들이 꽤 많이 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관광회사 사무실로 가지 않고 이리로 바로 왔나 보다’ 생각하면서 우리는 버스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관광버스는 편안하긴 했지만 그리 최신식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어딘지 모르게 시골 고속버스 같은 느낌이 솔솔 났다. 계속 버스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시골 사람들 같이 순박하고 어리어리한 분위기여서 나는 속으로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사람 구경’에 푹 빠져 들었다. R은 엄마를 따라 관광버스를 타기는 했지만 관광버스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별로 신나는 기색은 아니었다.

 

  거의 버스 좌석이 다 찼을 무렵, 색이 바랜 금발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할머니 가이드가 나타났다. 그녀는 속사포같은 스페인어로 와글와글한 관광객들을 단번에 조용히 시킨 다음 버스 안을 한 바퀴 휙 둘러 보더니 중간에 끼어 앉은 R과 나를 발견하고 ‘잉글리쉬?’ 하고 물었다. 우리가 ‘예스’ 라고 하니 ‘오케이!’ 한다. 그러자 우리 옆에 앉은 대여섯 명의 중년 아저씨 아줌마 일행이 갑자기 ‘이탈리안!’ 하고 외쳤다. 다시 한 번 할머니 가이드는 ‘바 베네(Va Bene)!’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곧 버스가 부르릉 시동을 걸면서 천천히 출발한다. 버스에 가득 탄 국제 관광객들을 데리고 할머니 가이드는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3개 국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톨레도 1일 관광 안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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