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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모이고 나누는 기쁨(루가 12,15-21)
09/20/21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추석을 명절 중의 명절로서 일년 중 가장 즐겁게 지내왔습니다. 식구들이 함께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며, 가족들이 서로 만나 풍요로운 결실을 즐겼습니다.

  

추석 명절은 만남의 날이요, 만나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날이며, 서로 모여 정을 나누면서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입니다. 고향을 찾아가 살아있는 부모 형제를 뵙고 효도와 우애를 다짐하는 것이나, 산소를 찾아가 돌아가신 조상들을 뵙고 그들의 고마움을 추모하는 것이나, 똑같이 웃어른들께 바쳐야 하는 존경심의 발로이며 훌륭한 정신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조상께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였습니다.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초근목피로 연명을 할망정, 때에 따라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일에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조상 이야기를 하면 픽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핵가족으로 점점 확산되어 가는 세상에 살아있는 부모도 잊어버리는 판국인데, 죽은 조상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삶을 이어준 조상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같은 나무 뿌리와 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조상과 우리도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고 뿌리를 무시할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대를 이어준 조상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조상을 위한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중에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한 조부모님도 계시고, 바로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도 계시며, 평소 우리에게 잘해주던 일가친척들도 계십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자더니 의리없이 먼저 떠난 사람도 있고, 비록 유명은 달리하고 있지만 언제나 잊지 못할 친구도 있으며, 불의의 사고로 인생의 포부를 다 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족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추모하면서 살아생전에 못다한 효성과 사랑을 바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허락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혹시라도 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성을 보시고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남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지만, 언젠가 다음번 추석에는 남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지상 나그네생활에만 급급하지 말고 영원한 고향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다음 조상을 대할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은 여생을 뜻있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공수래 공수거 인생임을 명심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모두 살려주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잊지 말고, 어떠한 역경과 시련을 당하더라도 결코 신앙의 길에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맙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이웃, 특히 불우한 이웃들도 모두다 우리의 형제요, 가족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서 인정을 베풀고 송편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는 미덕을 간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추석 명절을 가장 보람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특별히 실향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허락하여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마지막으로,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성민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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