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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요한 11,1-45 (가))
10/11/21  

내가 눈물의 의미를 깊게 배운 것은 아버님의 눈물을 통해서다. 나에게 중요했었던 사건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적어도 네 번의 큰 눈물을 흘리셨다. 물론 아버지의 나를 위한 눈물은 더 많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첫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말기에 왼손을 크게 다쳤을 때였다. 어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다친 나의 손을 본 아버지는 며칠 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도 아주 어릴 때, 당신의 오른손을 심하게 다치셨기 때문에, 특별히 나에게 더욱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대하여 깊게 동감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를 마친 내가 서울의 혜화동에 있는 성신중학교(소신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했을 때였다. 시험을 치르기 전날 예비소집 때에 방학 동안이 아니면 부모님도 못 보고,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세수해야한다는 교장 신부님의 설명을 듣고, 차라리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나로서는, 입학시험의 낙방이 아주 슬픈 일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이러한 묘한 마음을 잘 모르시는 아버지는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 석자가 안 보이자 끝내 펑펑 우셨다. 그러니 철부지였던 내가 아버지의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근처의 식당에서 우족탕을 드시면서도 나의 낙방을 아쉬워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세 번째는, 오랫동안 여러모로 번민하고 망설이던 내가 드디어 결단을 내리고 예수회에 입회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던 날이었다. 아버지께 큰절을 올리자, “한번 집을 떠나서 출가했으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말아라!” 하셨다. 그 순간 아버지의 두 눈은 눈물로 가득하였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서 얼른 집을 나섰다.

  

마지막은, 아버지의 임종 때였다. 하루 종일 우리 가족들을 쳐다보시던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과장된 표현으로) 폭포수와 같은 눈물을 흘렸다. 결국 아버지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서 형님이 그분의 눈을 편하게 해드렸다

 

요즈음 나는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눈물들이 모두 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래된 대중가요에서 ‘사랑은․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하고 있음도 동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눈물은 인간의 마음(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신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우선 그분이 죄 이외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과, 예수님도 우리 인간들처럼 연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님의 눈물은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사랑과 감정의 소유자임을 입증해준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다쳐서 고통받고 있을 때에, 내가 시험에 낙방했을 때에, 내가 집을 떠나 어려운 수도생활로 들어갈 때에, 그리고 지상의 삶에서 서로 헤어질 때에 사랑의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도 당신의 친구 라자로가 죽었을 때에 역시 우셨다. 그리고 얼마 후면 당신 스스로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것을 예감하시고 슬프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눈물은 그분께서 우리 인간들의 고뇌와 아픔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히 인간적 감정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눈물은, 당신을 믿는 이들 모두에게 죽음을 넘어서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요한 11,25) 하느님 구원의 메시지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땀은 우리 인간 구원을 위한 당신의 한없는 사랑의 처절한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죄와 고통과 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사랑하올 주님! 비천하고 미약한 저희 죄인들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변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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