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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7.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08/06/18  

5월 12일 아침.  어제는 너무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밤새 정신없이 잤다. R은 숙소에 돌아 오자마자 해리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모른 척하고 욕실에 왔다갔다하는데 훌쩍거리며 소근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리고는 곯아 떨어져 천둥소리를 내며 자는 바람에 나는 도리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오늘 일정의 시작은 두오모(Duomo)라고 불리는 피렌체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꼭대기 돔인 쿠폴라(Cupola)에 올라가는 것이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463개의 계단을 올라가 꼭대기에서 피렌체 전체를 내려다 보는 코스였다. 피렌체를 둘러 보기 전에 그곳에 오르려는 이유는 제일 먼저 도시 전체를 위에서 조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두오모 코폴라에 오르고 오후에는 맞은 편에 있는 조토의 종탑 (계단 414개)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하루에 다 해치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두오모 코폴라는 일찍 8시 30분에 입장하는 것으로 예약했었다.

 

우리는 7시에 일어났다. 너무 피곤해 비몽사몽인 상태였지만 티켓과 소지품을 잘 챙겨 숙소를 나섰다. 지갑을 잃어버린 R은 빈 손에 핸드폰만 들었고 나는 작은 가방에 꼭 필요한 것만 넣고  안전하게 어깨에 사선으로 걸쳤다. 건물을 나오면서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일커의 에어비앤 비는 정말 좋은 위치였다. 아파트가 있는 골목을 빠져 나오면 바로 폰테 베키오가 시작되는데 나중에 보니 폰테 베키오에 연결되어 있는 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8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섰는데 중세도시 피렌체는 벌써 부산스러웠다. 상점들이 문을 여는 중이었고 출근길의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이탈리아 스쿠터 베스파(Vespa) 들이 골목마다 줄줄이 빠져 나왔다. 우리는 폰테 베키오로 들어 섰다. 어제 불안한 마음으로 허둥지둥 다리를 건널 때 전혀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폰테 베키오는 아르노강 위에 지어진 수많은 다리들 중에 하나인데 피렌체를 상징할 만큼 유명한 다리이다. 10세기 이전에 이미 지어졌으나 전쟁과 홍수 등의 와중에 파괴되어 수 차례 다시 지어야 했다고 한다. 현재 다리는 14세기경에 다시 지어졌고, 그후 메디치 가의 통치 아래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원래는 다리를 따라 푸줏간들이 즐비했는데, 피렌체 도시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메디치 가에서 푸줏간들을 다 없애고 대신 금을 거래하는 상점들로 채워 넣었다. 현재도 폰테 베키오 위에는 금은방이 다리 양 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우리가 건널 때는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당시 메디치 가의 위정자들이 그들의 궁전 베키오 성(Palazzo Vecchio)과 피티 성(Palazzo Piti)을 오가는 동안 걸어야 하는 거리를 단축하고 암살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폰테 베키오 다리 위에 바사리 복도(Vasari Corridor)라고 부르는 비밀 통로를 만들어 급행으로 다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다리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리 위에 이층 건축물이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도 별로 없고 금은방들도 열지 않아 한적한 폰테 베키오 위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그 수려한 풍경을 바라 보았다. 가끔씩 홍수를 일으키기도 했다는 아르노강은 아침 햇살 아래 반짝이며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폰테 베키오 한 쪽으로는 단테의 산타 트리니타 다리가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알레 그라지에 다리가 보였다.

 

피렌체에 오기 전에 폰테 베키오를 생각하며 푸치니의 오페라  ‘지아니 스키키’에 나오는 노래 ‘오 미오 바비노 카로’를 흥얼거리곤 했다. 사랑에 빠진 아가씨 로레타가 연모하는 청년과의 결혼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폰테 베키오에서 뛰어내려 아르노강에 빠져 죽겠다고 아버지에게 애원하는 노래. 가사 중에 폰테 베키오가 나오는 부분만 자꾸 반복해서 부르니까 R이 제발 좀 그만하라고 내게 ‘애원’하던 그 노래를 정말로 폰테 베키오 위에 서면 한번 나직히 불러 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눈 앞에 벌어진 그림엽서같은 풍경 속에서 깡그리 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 다닐 폰테 베키오를 지나 두오모가 있는 피렌체의 중심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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