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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신앙인 (마태 23,1-12 (가))
11/15/21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 자칫 잘못하면 쉽게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위선과 교만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그들의 태도를 심하게 책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꾸려서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닌지 곰곰 생각하며 같이 묵상해 보십시다.

 

위선과 교만에 대한 그리스도의 책망의 말씀은 복음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루가 18, 11에서의 기도하는 바리사이의 모습은 그 한 예입니다. “오 하느님!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거나 하지 않으며 또 이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전능하신 분의 제단 앞에 서서 서슴치 않고 교만에 넘친 고백을 하는 것을 봅니다.

또 루가 10, 25 이하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도 위선에 가득 찬 사람의 몰인정을 볼 수 있습니다. 강도를 만나 칼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옆에 쓰러져 있는 데도 거룩한 제관은 피를 묻히면 부정을 탄다고 그냥 지나쳤으며, 가장 성자연한 체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친 레위인도 막상 자기가 가르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회에서는 그 고통 중의 형제를 외면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를 회칠한 무덤 같다고도 하셨으며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질책하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회칠한 무덤이나,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아닌지요? 우리는 간택된 하느님의 백성이니까, 사랑을 실천해야 될 기회를 외면해도 괜찮겠습니까?

 

남들에게는 사회사업이네, 자선사업이네 하는 허울 좋은 간판을 앞에 내걸고, 뒷구멍으로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정을 일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나쳐 버릴, 한낱 남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이에도 크든 작든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없지 않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혼자 거룩한 체, 혼자 열심한 체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범죄를 떡 먹듯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와 다른 점이 있어서, 우리는 남보다 잘났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림을 받았다는 이 위험한 이기심은 가장 위험한 위선입니다. 하느님의 온전한 선물에 의해 간택된 우리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우쭐거리는 교만 위에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신심과 기도를 이용하여 견고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비는 마음으로 제단에 예물을 바치나 분심으로 가득한 마음은 예배하는 척 하면서 머리를 숙일 뿐입니다. 남들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고, 체면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많은 교무금을 바치는 신자라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윤리적인 타락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심한 척 예배를 드리고, 묵주를 굴리나 마음 속에는 이기주의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언제나 불안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비판을 일삼는 현대판 바리사이가 돼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기도하고 영적 생활을 한답시고 소화가 안될 정도까지 먹으면서 우리의 이웃이 죽어가고 있음을 모른척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야 할 꾸지람을 내가 대신 듣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러한 위선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틀리지 않습니다.

 

가면을 쓴 이중생활은 하느님 앞에는 부질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비천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하느님의 겸손한 종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지 않은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조정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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