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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있다 (마태 25,1-13 (가) )
12/06/21  

서양에는 ‘네 바퀴 신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생에 세 번 성당에 가는 사람인데, 그것도 자기 발로 걸어서가 아니라 ‘네 바퀴 달린 차’를 타고 가는, 즉 우리말로는 ‘나일론'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네 바퀴 신자는 태어나서 유아 세례 받을 때 유모차 타고 한 번, 혼인할 때 승용차 타고 한 번, 죽어서 장례식 때 장의차 라고 한 번, 그렇게 일생의 중요한 때, 세 번만 성당의 신부에게 신세를 지는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맞이하는 때가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태어날 때, 혼인할 때, 죽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그때가 우리 사람들의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죽음의 순간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옮겨가고, 혼인할 때에는 두 사람이 합하여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새 삶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혼인의 순간에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그 맞이함이 소홀하다면, 그 신부의 삶 전체가 실패로 연결되지 않겠느냐는 물음과 함께, 마지막 때도 그러하니 이 세상의 삶 전체가 실패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깨우침을 준다.

 

항상 깨어 있으라

팔레스티나 지방의 혼인 풍습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절정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신랑의 도착이 알려지면 들러리 처녀들이 신랑에게 마중 나가 신부집으로 안내한다. 그 다음에 모든 이가 신랑의 집으로 가서 성대한 혼인 잔치를 벌인다,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이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에서는,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들과 다섯 명의 미련한 처녀들의 행동이 대조되고 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어느 때 올지 모르기에, 오랫동안 등불을 켤 수 있도록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였다. 반면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갖고 있었으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 막상 등불이 꺼져갈 때에도 남에게 빌릴 생각만 하였지 가게에 가서 살 생각은 못하였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점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없었다. 모두 같이 곱게 단장하고 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기름의 준비였고, 부족한 것을 어떻게 챙기느냐는 것이었다.

  

슬기로운 사람은 내일을 준비한다. 어제와 오늘을 연결시키고 또 오늘을 내일과 연결시키며 준비한다. 그렇게 “내일이 있다"고 내일을 위해서 준비한다. 미련한 사람은 오늘만을 산다.

 

내일을 준비하는 삶

오늘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 있다, 직장인이면 직장인으로서, 주부면 주부로서 하루 24시간은 같다. 그 중에서 1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일의 나의 모습이 달라진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발 닦고 TV보고 잠을 잔 친구와 퇴근 후 1시간씩 공부를 한 두 친구의 10년 후 모습은 크게 달랐다. 사실 내일을 위한 준비는 오늘 하루 1시간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혼인에 비길 수 있다. 그러나 신랑이 도착하리라는 사실만 알 뿐 그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이미' 와 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대에서 ‘신랑(주님)'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는' 자세로 자기 발로 걸어가든, 네 바퀴를 이용하든, 매일 열심히 왔다 갔다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때가 오면 “빌리면 된다", “사면 된다", “내일이 있다"는 식의 게으름과 미련은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김현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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