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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바라는 것 없다
12/13/21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바라는 것 없고 기대도 없고 사로 잡히지도 않는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법구경)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존자에 대한 신망이 매우 두터우셨다. 사리불존자는 안거가 끝나고 다른 지방으로 외출을 떠나면서 젊은 비구들에게 부탁을 하였다. 만약에 신자들로부터 가사공양이 들어오면 자신의 것도 한 벌 남겨놓아 달라고 하였다. 이 말이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 해석되어 결국 사리불존자가 공양물에 집착하는 천박한 수행자로 낙인이 찍혀버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아신 부처님은 사리불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으시고 대중을 다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젊은 비구에게 가사를 남겨 놓으라고 부탁한 이유를 물으셨다. 사리불은 조용히 그러나 확고한 신념의 자세로 부처님께 말씀을 올렸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에 전념하는 도반이 가사가 너무나 낡아서 추위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게 주려고 부탁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리불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대중은 사리불을 의심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리불은 자신의 부주의한 언행으로 대중을 번거롭게 한 것에 대해서 도리어 깊은 자책을 하였다고 한다. 사리불존자는 자신을 오해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린 동료에 대해서 원망을 하기 보다는 오해를 낳게 한 자신의 행위를 책망함으로써 스스로를 수행자의 길에 한 걸음 더욱 나아가려 한 진솔한 수행자이다.

 

남 탓 하기 전에 자신 먼저 단속 사리불존자의 일화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느 날 힘든 일을 하고 나서 정사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먹음직스럽게 그릇에 담겨 있는 튀김을 발견하였다. 마침 배가 고팠던 사리불존자는 튀김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러나 그 튀김을 담아두었던 젊은 비구는 사리불이 음식에 탐착하는 탐욕심을 갖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또한 이 일을 들으신 부처님께서 대중과 사리불을 불러서 일의 전후를 밝히도록 지시하셨다.

 

사리불은 남의 음식을 함부로 먹은 것에 대해서 깊은 참회를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자책하기를 ‘맛있는 음식을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사리불존자는 일생을 맛있는 튀김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맛에 탐착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였다고 한다. 사리불의 수행은 남을 향하여 원망하기 보다는 언제나 스스로를 가다듬음으로써 자신을 단속하였던 것이다. 남을 향하여 원망을 하거나 분노를 토로하지 않는 사리불에 대해서 대지(大地)와 같이 말이 없고 일체에 동요됨이 없는 부동(不動)의 성자라고 칭찬하고 있다.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초연한 삶을 살기는 사리불의 도우(道友)인 목련존자도 마찬가지 이다. 두 사람은 앗사지 비구를 만나서 발심하여 부처님 승가에 들어온 이후에도 변함없는 좋은 도반으로서 서로를 탁마하였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견지에서 사리불과 목련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할 때면 부처님께서는 말 없는 두 사람을 위하여 대중을 모이게 하였고 오해를 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그 때마다 이 두 사람은 남을 원망하기 보다는 오해를 일으키게 한 자신들의 행위를 자책함으로서 더욱 참신한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가다듬어 갔다.

 

우리는 말로는 욕망을 끊어버렸다고 하면서 안으로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는 수행자를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오래된 습관처럼 버려야 할 탐욕의 찌꺼기를 한 편에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다. 욕망은 날이 오랠수록 집착이 되어 자신의 주위를 맴돌게 된다. 이러한 집착은 ‘한 칼로 두 동강[一刀兩端]’을 내어 버리듯 자신의 의지로 내쳐버릴 때 비로소 자취를 감추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은 진리에 집착하는 법집(法執)까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나머지 잡다한 욕망은 쓸어버릴 하찮은 것이며, 무상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연기법(緣起法)이 근본이 된다.

 

『금강경』의 말씀처럼 강을 건너고 나서는 뗏목을 버리고 가듯이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쓸데없는 욕망에는 더더욱 초연히 벗어나는 삶을 사리불존자의 일화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본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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