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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을 뜨자
08/13/18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이다(一切唯心)라고 말합니다. 마음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心外無物), 마음이 곧 부처다(是心卽佛)라고도 합니다.

 

마음 “심” 한 자의 문제만 옳게 해결하면 일체의 불교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체만법을 다 통찰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동시에 마음을 알게 되면 부처를 알고, 마음이 부처이니까 삼세제불(三世諸佛)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이 마음에서 시작해서 마음에서 끝납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의 눈을 뜨자” “마음의 눈을 뜨자”라고 말합니다.

 

그뿐입니까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자기가 먼 천지개벽(天地開關) 전부터 벌써 성불했다는 것,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성불한 그대로 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결국 자성(自性)을 보는데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성불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관법(觀法)을 한다, 주력(呪力)을 한다, 경(經)을 읽는다, 다라니를 외운다 등등 온갖 것이 다 있지만 그런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수승한 방법이 참선입니다.
참선하는 이것은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만 참선하는 것이 아니고 딴 종교에서도 참선 많이 합니다.



가톨릭 수도원의 아빠스(수도원장)라는 분이 나에게서 화두를 배운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요새도 종종 오는데 화두 공부는 해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와서 화두 배운다고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신네들 천주교에서는 바이블(Bible) 외에 무엇으로써 교리의 의지(依支)로 삼습니까?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의 신학대전(神學大典)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아퀴나스는 그 책을 거의 완성하게 되었을 때 자기 마음 가운데 큰 변동이 일어나서, 그래서 다시는 그 책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책은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만 그래도 그 책이 하도 훌륭하므로 예수교에서는 그것을 신학교리의 큰 권위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책이 처음에는 금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썩은 지푸라기인 줄 알고 차버린 그것에 매달리지 말고, 그토록 심경 변화된 그 마음자리, 그것을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화두를 부지런히 부지런히 익히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교 사람들도 참선은 누구든지 해야 된다고 해서 실제로 하는 사람이 많은데, 불교 믿는 사람이 도리어 참선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참선을 하려면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야 되느냐 하면 화두를 근본으로 해야 됩니다. 화두를 배워야 됩니다. 화두,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눈을 떠서 확철히 깨쳐야 알지 마음의 눈을 떠서 깨치기 전에는 모릅니다.

 

여기 좋은 법문이 있습니다.

오색 비단구름 위에 신선이 나타나서(彩雲影裏神仙現) .
손에 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手把紅羅扇遮面)
누구나 급히 신선 얼굴을 볼 것이요(急須著眼看仙人)
신선의 부채는 보지 말아라(莫看仙人手中扇)

 

생각해 보십시오. 신선이 나타나기는 나타났는데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신선을 보기는 봐야겠는데 얼굴을 가린 부채만 보고 신선봤다고 할 것입니까? 빨간 부채를 보고서 신선을 보았다고 하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화투를 참구(參求)하는 근본자세가, 화두는 암호인데 이 암호 내용을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느냐 하면, 잠이 꽉 들어서도 일여(一如)한 데에서 깨쳐야만 풀 수 있는 것이지 그전에는 못 푼다는 것,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눈을 확실히 뜨면 이것이 견성인 동시에 뜰 앞의 잣나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란 것은 마음 “심(心)”입니다.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의 문,제 일체의 만법을 다 알 수 있는 것이고, 삼세제불을 다 볼 수 있는 것이고, 일체법을 다 성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뭐냐 하면 자성을 보는 것인데 바로 견성을 말합니다.
그러니 공부 부지런히 부지런히 하여 화두를 바로 아는 사람, 마음의 눈을 바로 뜬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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