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실천의 새해
01/10/22  

不落大小不着有 一二積成無峰塔
無高塔高不可量 能覆法界嚴淨土
크고 작음에도 떨어지지 않고
있음에도 집착하지 아니하여
한 개 두 개 돌을 쌓아 무봉탑(無峰塔)을 이룰진대는
한없이 높은 탑의 높이를 측량하여 알 수가 없으니
능히 온 천지를 덮어 정토를 장엄하도다.

 

아무리 높은 성이나 탑도 조그마한 돌을 쌓고 또 쌓으면 결국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착한 일 하나 하고 둘 하고 차츰차츰 하다 보면 결국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탁발을 나가셨을 때 일입니다. 탁발하기 위해 아침에 어느 가정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젊은 부인이 얼른 밥을 한 그릇 가지고 나와서 부처님 바루에 넣어 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자리에서 축원해 주시기를, “이 밥의 열 배 천 배가 그 공덕이 되어서 복을 받을지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성불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부인의 남편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듣고 보니 너무나 허무한 소리라, 그 말씀이 믿기지 않아 부처님을 따라 가서, “부처님, 방금 부처님께서는 제 아내가 시주한 그것이 어떻게 수 없는 공덕이 되고 씨앗이 되어 고통에서 벗어나 부처가 된다고 하십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길거리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면서 되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저 나무가 커서 많은 열매가 열리는데 저 나무는 본래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거야 본래 저 나무의 씨앗에서 나왔죠.”
“그렇습니다. 저 나무가 겨자씨만큼 작은 하나의 씨앗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큰 나무가 되어서 이제는 수많은 열매를 맺듯이 부인의 시주공덕은 이와 같습니다.”

 

이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록 작은 공덕 하나를 지었지만 그 씨앗이 열매가 될 때, 처음 뿌린 씨앗과 수확하는 열매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도들은 이런 간단한 이치를 마땅히 새겨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저버리고 ‘부처님의 높은 가르침’만 생각하고 형이상학적인 신앙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신행 과정의 씨앗이나 공덕을 지어가고 가꾸는 것보다 열매만 생각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지양해야 할 자세입니다.

공덕이라는 것은 내 몸으로 실천하고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부처님 앞에 섰을 때 그것이 공덕이 되는 것이지, 절 꾸벅꾸벅 세 번 하고 돈 천 원·만 원 부처님 앞에 갖다 놓았다고 다 공덕인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동과 업을 정려히 가다듬고 매사에 불사를 짓는 심정으로 수행정진해야 합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날 때 인연에 따라 어떤 운명을 타고 납니다만 그 운명이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행동, 내가 짓는 복에 따라서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신행불자들은 절에 와서나 평소 일상에서 항상 복 짓는 생활과 선행을 하는 데 따라서 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그 전생에 지은 어떤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나의 삶, 나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연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열심히 살고 정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안락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작은 나를 넘어서고 작은 나의 이기를 넘어서는 대승적 이해와 대승적 삶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꿈과 희망이 충만하며, 자비를 실천하는 훈훈하고 따뜻한 복된 삶이 이어지시길 일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회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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