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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9. 쿠폴라 (Cupola)
08/20/18  

우리가 밟고 올라가는 계단들은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반질반질하게 변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밟고 쿠폴라까지 올라갔을까? 올라가는 중간중간 옆으로 뚫린 창으로 플로렌스 시가지가 환히 보인다. 안전을 위해서인지 모두 유리나 쇠창살이 끼어 있었고, 쇠창살이 있는 창으로는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 오기도 했다. 그렇게 가끔씩 나오는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기도 하며 우리는 끝없이 올라갔다. 이미 올라가서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같은 계단을 이용한다. 누군가 위에서 내려오면 비켜 서 주어야 하는데 그때 간신히 잠깐 숨을 돌린다. 가다가 계단이 꺾일 때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올라가면서 실제로 463개가 맞는지 계단을 세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부질없는 일이었다. 숨이 턱에 닿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끌며 올라가는데 계단이 몇 개냐인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고 과연 이 계단이 언제 끝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이자 희망이었다. 밑에서 따라오는 사람들과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이제 힘들어서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는 자포자기 마음이 들 무렵 드디어 계단이 끝났다. 갑자기 조그만 방앗간 같은 공간이 나타나면서 그 한 구석에 마치 옥상으로 올라가는 듯한 작은 계단이 나타났다. ‘방앗간’에는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어떤 육중한 체구의 아저씨가 붉은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앉아 있었다. 숨을 몰아 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저씨 옆에서는 작은 체구의 부인이 쿠폴라 카탈로그를 가지고 그의 얼굴에 열심히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다. 너무나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하늘로 뚫린 것 같은 작은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115미터 높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꼭대기에 섰다.  ‘르네상스의 탄생지’, ‘중세시대의 아테네’ 라고 불렸던 피렌체가 5월의 파란 하늘 아래 360도의 대 파노라마로 우리를 맞았다. 황금 십자가가 하늘을 향해 세워져 있는 대리석 첨탑 꼭대기에 올라 선 사람들은 모두 숨을 멈추고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말없이 바라 보았다. R과 나도 대리석 기둥을 따라 둘러져 있는 쇠 난간 앞에서 손을 꼭 잡고 피렌체를 내려다 보았다. 바람이 불어 와 머리카락을 마구 흩날렸다.

 

평평한 분지에 빨간 지붕 중세 건물들이 끝없이 보였다. 우피찌 미술관, 베키오 궁전, 피티 궁전과 여러 성당들이 곳곳에 보였고 바로 앞에는 ‘캄파닐레’라고 부르는 조토의 종탑이 우뚝 서 있었다. 피렌체는 중세 유럽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당대 최고로 부유한 도시였다. 우리 눈 앞의 피렌체 풍경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역사 유산 현장으로 지정되었으니 우리 눈 끝이 닿는 곳까지 놀라운 역사와 문화 유산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빨간 지붕 건물들이 끝나는 곳에는 푸르른 토스카나 언덕들이 보였다. 부드러운 능선에 녹색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르네상스 풍경화에 꼭 나오는 짙푸른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언덕들 중간 중간에는 성당들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경치 속에는 어디든 성당들을 지어 놓았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풍경을 찍기도 하고 피렌체 전경을 뒤에 놓고 행복한 순간을 찍기도 했다. R과 나도 옆 사람에게 부탁해 피렌체 전경과 토스카나 언덕들이 뒤에 나오도록 한 장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쿠폴라를 다시 한 번 360도로 돌면서 하늘에서 본 피렌체의 모습을 눈에 꼭꼭 눌러 담았다. 500년 전에 이렇게 높은 건축물을 지어 올린 이탈리아 사람들이 놀랍기만 했다. 재력이 뒷받침했고 뛰어난 건축술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늘 높이 아름다운 꽃의 성당을 지어 신께 헌정하겠다는 믿음과 헌신이 그 소망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쿠폴라에서 내려오는 길은 너무 쉬웠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고 그 계단의 길이를 알게 되었기에 심리적인 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육체적으로도 훨씬 덜 힘들었다. R과 내가 깡총거리면서 내려와 거의 입구에 다 와 가는데 그제서야 밑에서 새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상기된 표정으로 헉헉거리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남은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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