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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죄를 지으면 (마태오 18,15-20)
08/20/18  

한 사형수가 형 집행 전에 이렇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생을 비참하게 마치게 됨은 어느 면으로 부모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편이었지요. 특히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충고나 매질을 한 번도 안 하셨을 정도로 나의 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죄의 타성에 물들어 나쁜 짓에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에 이렇게 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지요. 부모님의 맹목적인 사랑이 결국 나를 파멸 시켰습니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속담이 있듯이, 따끔한 매와 충고는 한 인간을 성숙시키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충고의 의무와 충고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우선 본인에게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할 때는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도록 둘이나 셋의 도움을 받아 잘못을 시정해 주도록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 즉 그 잘못을 제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나 공적인 권위를 가진 자에게 알리어, 그 잘못을 시정해 주도록 해야합니다.

 

이렇게 하여서도 잘못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십시오. 예수님 시대에 이방인이나 세리는 분명 죄인으로 배척받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구원에서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세리였던 자케오가 회개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충고와 교회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언젠가는 회개하도록 기도하고 도와주라는 묵시적인 뜻이, 오늘 복음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형제 중 잘못한 이에게 충고해야 할 의무는 크리스천적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현세에 살고 있는 한 누구나 필연적으로 타인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자기만 생각하고 이기적이라면 그는 인간의 도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자기 모순이며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구원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가진 자라면 타인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사랑을 쏟는 태도는 적극적 의미로는 타인이 잘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며 잘못이 있을 때는 충고하여 잘못이 없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 수수방관하거나 무관심하다면 타인은 결국 구원의 빛을 잃게 되며, 수수방관한 그리스도교 신자는 방조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형제 중 누가 잘못이 없도록 협조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데전 3,1-5). 이런 예는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잘못을 고쳐 주거나 충고해 주는 의무는 중대합니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 따라오는 임무이며, 그 도움의 효과가 크면 클수록 의무 또한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충고하는데 있어 비판을 위한 비방이 되어져서는 결코 아니 되겠습니다. 충고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명백히 하는 판사의 판결문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사랑의 호소요, 함께 나누는 고통이며 염려입니다. 

 

사랑에 찬 충고는 판결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 함께 치유되길 희망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공감의 터전에서 이룩됩니다. 따라서 충고는 형제애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충고는 인내와 지혜를 요구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거듭 회개할 때까지 계속 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충고는 때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때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의사는 환자를 죽일 수도 있고 과도하게 투약하여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듯이 충고도 각자가 지혜롭게 판단하여서 적시에 적절히 해야겠습니다.

 

이제 충고하는 우리가 아니라 충고 받는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자기의 과실이 타인에게 드러나길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충고 받기도 싫어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자기의 병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거나 의사의 권고를 무시할 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여야 하며 타인에게 개방적이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잘못을 할 수 있고, 우리도 이 범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이러한 인간적 나약성을 시인함으로써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비울 줄 모르는 자, 교만한 자는 이웃을 잃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마저 잃게 됩니다.

 

이병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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