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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0. 라 밀케리아(La Milkeria)
08/27/18  

우리는 대성당 옆으로 난 작은 문으로 다시 나왔다. 청명한 오전 햇살 아래 두오모광장에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 와 있었다.  현대인들의 눈에도 넓고 크게만 보이는 광장인데 5백 년 전 중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거대한 광장이었을까? 광장에 가득 찬 관광객들은 대부분 입을 벌리고 대성당을 올려다 보고 있었고, 입장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질서 정연하게 가이드를 따라가는 단체 관광객들, 광장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현지인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현지인이 아니고 대부분 중동계 이민자들로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광장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 (이들은 매우 세련되게 옷을 입고 있어서 관광객들과 확실하게 차이가 나 보였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R과 나는 내친김에 ‘대성당 내부도 둘러 보자’ 하고 대성당 정문으로 가 보았다. 대성당 입장은 원래 무료이기 때문에 입장권을 구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막상 입구로 가 보니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우리는 질려 버렸다. 그래서 쿠폴라 통합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는 두오모오페라박물관 (Museo dell’Opera di Santa Maria del Fiore)부터 우선 관람하고 나중에 대성당 줄이 줄어들면 다시 한 번 가 보기로 결정했다.

 

시간은 이미 10시를 넘었고 우리는 그때까지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해서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허기가 져 있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달려 와 쿠폴라 463계단을 올라갔다 내려 왔으니 지치고 허기 진 것이 당연했다. 오페라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서 우선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광장 주위를 둘러 보니 의외로 적당한 곳이 없어서 구글 검색을 했다. 라밀케리아 (La Milkeria)라는 카페가 떴다. Borgo Degli Albizi 87R, 50122.  커피와 아침 식사 가능. 우리는 구글맵을 보면서 찾아갔다.

 

라밀케리아는 두오모광장에서 아주 가까워서 금새 찾았다. 다른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돌로 지어진 중세 건물에 아치 형으로 정문이 나있는 조그맣고 귀여운 카페였다. 우리가 카페로 들어 섰을 때는 실내에 경쾌한 칸초네 풍의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이미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무도 없었고, 카운터도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안에 들어 와서 보니 카페는 앙증맞기 그지 없었다. 하얗게 꾸민 카운터엔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몇 개 안되는 조그만 테이블들은 피렌체 풍 꽃무늬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우리가 카운터에 서 있으니 안에서 두 명의 직원이 나왔다. 소년과 소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아주 어린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둘 다 금발 곱슬머리에 통통한 몸집이었고, 그 위에 검은 빵떡 모자를 쓰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터질 듯한 뺨에 반짝거리는 눈동자,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뚱한 표정들이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았기 때문이다.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어가 아주 서툴렀다. 주문하는 내용을 겨우 알아 듣는 것 같았고, 영어로 의사 표현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다. R은 생수와 연어를 얹은 베이글을 주문했고, 나는 프로슈토와 폰티나 치즈를 얹은 토스트와 라떼를 주문했다. 내가 ‘라떼’를 달라고 하니까 빵떡 모자를 쓴 뚱보 소녀가 ‘라떼(Latte)? 솔로 라떼(Solo latte)?’ 하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 본다. 카운터에 뚱뚱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옆 눈으로 째려보며 심문하는 듯한 그 모습이 완전히 펠리니 영화에 나오는 인물 같아서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 했다. 나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렇다고 했다. 소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카운터 뒤로 사라졌다.

 

아기자기한 카페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우리 주문이 나왔다고 카운터에서 부른다. 얼른 가서 보니 내 몫으로는 덩그러니 웬 하얀 우유가 한 잔 나왔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커피는?’ 하는 시선으로 뚱보 소녀를 바라보니 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그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알로라(Allora)!, 카페 라떼(Café Latte)! 노(No)?’ 라고 소리치면서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척 뽑아 주었다. ‘카페 라떼’라고 정확히 말하지 않고 미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무심코  ‘라떼’라고 했더니 그녀 나름대로 확인하려 애썼던 것이다. 완벽한 펠리니 영화의 한 장면을 찍은 기분으로 나는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넣은 ‘카페 라떼’를 맛있게 마셨다. 베이글과 토스트도 맛있었고, 카페 평점은 별 다섯 개. 우리는 귀여운 라밀케리아 카페에서 피렌체에서의 첫 아침 식사를 무사히 잘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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