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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마르 10,46-52)
04/25/22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유대나라의 조그만 도시 예리고의 길가에 앉아 있던 거지 소경 바르티매오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놀랄만한 기적과 말씀으로 온 이스라엘을 떠들썩하게 하신 그분을 꼭 만나 뵙고 싶었던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선생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조용히 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주님을 부릅니다. 예수께서 그의 음성을 듣고 부르시자 겉옷을 챙길 생각도 없이 서둘러 예수께로 달려갑니다. 그는 분명하고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자기의 소원을 예수께 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예수께 매달림으로써 은혜를 받는 바르티매오의 믿음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그의 끈덕진 부르짖음을 행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지란 신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계시는 스승 예수님을 노상에서 함부로 불러대니, 주위 사람들의 입닥치라는 꾸지람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의 불행을 예수께 호소하기로 오랫동안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부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 편이라는 소문대로 자기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또 그의 즉각적인 응답을 들 수 있습니다.
 
겉옷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낮에는 의복이지만 밤에는 그의 잠자기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순간에 그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시지만 자기가 부탁만 하면 틀림없이 들어주리라 믿었기에 서슴없이 예수께 말씀드립니다.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신자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가만히 반성해 봅시다. 우리는 말로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세상의 영화나 재물에만 너무 눈이 어두워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구원이나 생명보다도 현세 사물에 더 열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영적 소경들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야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천상 사물에 대하여 소경들인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는 암시가 숨어 있는 것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 모두가 구원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줄도 모르고 현세의 쾌락이나 행복에만 도취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얼마나 더 큰 것인가를 판단하지도 못하는 소경들입니다. 기껏해야 70, 80년 되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우리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 아니 영원한 그날을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노력을 하였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경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예수님 덕분에 눈을 뜰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실 분,  우리를 부활시키어 천당 영광 속에 불러주실 분, 주님께 목청껏 소리칩시다.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박명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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