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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Sixteenth of September c. 1956)
09/04/18  

르네 마그리뜨 (Rene Magritte 1898 – 1967)

(종이에 구아슈와 흑연 60 cm x 50 cm 미네아폴리스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벨기에 태생 초현실파 화가 르네 마그리뜨는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나무를 등장시켰다. 물론 상식적인 기대에 어긋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나무를 묘사했다. 이 그림에 대해 마그리뜨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무는 땅에서 태양을 향해 자라며 행복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그 이미지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움직이면,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것은 나무이다. 마찬가지로, 나무는 의자, 테이블, 문 등의 형상으로 목격자가 되어 우리 삶의 혼란스런 광경을 구경하게 된다. 나무가 관이 되면 땅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불이 붙어 타게 되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나무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피력한 위의 글처럼 이 그림은 잔잔한 이미지 속에 심상치 않은 문제를 제시한다. 하늘, 숲, 들판, 그리고 맨 앞의 잔디 순으로 멀고 가까움이 착실히 진행되어 오다가, 화면 중앙의 나무 속에 그려져 있는 초승달 때문에 그 원근법은 순식간에 파괴되어 버린다. 상식적으로 달은 나무 뒤 하늘에 그려져야 하는데 왜 나무 앞에 위치해 있을까?

 

이뿐만 아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왜 ‘9월 16일’ 인가? 그 특정한 날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날짜와 이 나무와 달 그림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마그리뜨는 ‘나는 그저 청회색의 저녁 속에 나무 위 달을 그렸다’ 라고 시치미를 뚝 떼며 그림 속 미스테리의 해결을 관객에게 미뤄 버렸다. 아무런 실마리를 갖지 못한 관객은 그림을 골똘히 들여다 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그것이 마그리뜨가 원하던 바라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물과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부조리와 모순을 식별해 내고, 그로 인해 일상의 평화와 안정이 흔들려버리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이 사실은 아주 연약하고 위태로운 구조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 말이다.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림이 갑자기 불안하고 부담스럽게 보이는데 어디선가 ‘9월 16일은 무작위로  그냥 붙인 제목이다’ 라는 마그리뜨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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