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2. 젤라토(Gelato)
09/10/18  

숙소가 가까워졌다. 들어가기 전에 생수를 사고 싶어서 오는 길에 마켓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숙소 바로 앞에 조그만 가게가 있던 기억이 나서 그리로 갔다. 그곳은 야채와 과일을 주로 파는 작은 편의점 같은 가게였다. 물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야채가 들어오고 있는지 상자를 받아 정리를 하고 있던 주인 여자는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가 생수병을 두어 개 가지고 나왔다. 얼마냐고 물어 값을 치르는 동안 그 주인의 반갑지 않다는 표정과 불친절한 태도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물이 필요했던 우리는 돈을 주고 가게를 나왔다. 돈을 받아 챙긴 주인은 고맙다는 말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휙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 당해보니 참 기가 막혔다.

 

숙소로 돌아 와 물을 듬뿍 마신 우리는 그대로 잠이 들어 세상 모르고 자 버렸다. 1시간만 자기로 했는데 4 시간을 내리 잤으니 오후의 황금같은 시간을 침대 속에서 보낸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463 개 계단 쿠폴라에 올라갔다 내려 온 것이 중노동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몸이 놀라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R과 나는 둘 다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다시 옷을 갈아 입고 씩씩하게 밖으로 나갔다. 오후 5시 30분에 조토의 종탑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통합 입장권 예매를 할 때 인터넷에서 경험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체력이 허락하면 463 개 계단 쿠폴라와 414 개 계단 조토의 종탑을 하루 만에 다 해 치우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너무 힘드니 하루에 하나씩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피렌체의 하루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쿠폴라에 올라 아침 해를 보고, 조토의 종탑에 올라 석양을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하루 안에 다 끝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른 아침에 쿠폴라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무척 힘들었지만 실컷 자고 나니 다시 기운이 솟아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 잘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R도  아무 불평없이 잘 따라오고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외국에서 혼자 살았기때문에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마음 편히  피렌체 관광을 하는 것이 더 좋은 눈치이기도 했다.

 

오후의 피렌체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바글거렸다. 지나가면서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미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조그만 이탈리아 차들은 좁은 길로 마구 달리고 있었다. 중심지로 들어가기 위해 폰테 베키오를 또 건너 간다. 아침에 문이 닫혀 있던 보석상들이 다 문을 열고 있어서 유명한 피렌체 금 장신구 제품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아르노 강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아침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잔잔히 흐르고 있었고, 폰테 베키오 위의 관광객들은 저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경치를 보면서 들뜬 표정으로 몰려 다녔다.

 

R과 나는 부지런히 걸어서 조토의 종탑으로 향했다. 5시 30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가는 길에 유명한 이탈리아 젤라토를 먹어 보기로 했다. 사실 피렌체에 가 보니 젤라토 가게가 길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나올 정도로 많이 있었다. 어디가 맛있을까 찾아 볼 필요도 없겠다 싶어 그냥  종탑 가까운 곳으로 들어 갔다.  곧 저녁식사를 해야 하므로 둘 다 스몰 사이즈로 맛만 보기로 했다. 화려한 색깔과 장식으로 잔뜩 멋을 부린 젤라토 진열대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다가 나는 바닐라 빈, R은 피스타치오 맛으로 제일 작은 콘 (Cone) 한 스쿠프 (Scoop)씩 주문했다. 검은 곱슬머리에 눈이 커다란 이탈리아 점원 청년이 우리를 힐끔 보더니 주문한 젤라토를 담아서 내 주었다. 생각보다 양이 무척 많다. 미국에서 먹던 젤라토는 아주 적은 양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정말 후하게 주는구나’ 생각하면서 계산대로 갔다. 캐쉬어가 ‘15 에우로! (Euro)’ 라고 호기롭게 소리친다.

 

유로가 익숙지 않은지라 달라는 대로 주고 나왔다. 젤라토를 우선 한 입 먹었는데 영 찜찜했다. 나는 가게로 다시 들어가 가격표를 확인해 보았다. 제일 작은 사이즈는 2.5 유로, 제일 큰 사이즈가 7.5 유로다. 분명히 제일 작은 것으로 주문했는데 우리에게 제일 큰 것으로 안긴 것이다. 가만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해 주문대로 다시 가니 큼직한 젤라토 콘을 손에 든 내 또래 미국 아줌마가 눈만 껌벅거리는 점원에게 큰 소리로 막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 뒤에도 서너 명이 줄줄 녹아 내리는 젤라토를  하나 씩 들고 화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바가지 썼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골머리 썩기 싫어 나와 버렸다. 따라 들어 왔던 R 도 ‘엄마, 그냥 잊자’ 라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마구 덮어 씌우는 이탈리아 젤라토 가게. 아주 나쁘다.

폰테 베키오 위의 금은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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