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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 14,13-21 (가))
08/01/22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못할 짓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3일 굶고 나면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 아무리 금강산이 좋다해도 배가 쪼르륵 소리를 내면 구경도 시시해지고 귀찮아질 것이다.
설움 중의 큰 설움은 배고픈 설움이다. 남들은 배불리 먹고 있는데 나의 배만 쪼르륵 소리를 내고 있다면, 더구나 내 자식들이 배고파서 울고 있다면 그 설움이야 오죽하겠는가!

예수님은 배고픈 자의 설움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고 싶어서였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예수님 주변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수님은 매일 그 일을 위해서 여기저기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쉬고 싶으셨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피신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곳까지 찾아와서 애원하였다.

예수님은 하루종일 병자들을 낫게 하셨다. 해가 서산에 걸려서 제자들은 사람들을 돌려보내자고 예수님께 재촉하였다. 그들은 지쳐있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어서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좀 쉬면서 맛있는 음식과 대포 한잔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를 더 내다보고 계셨다. 그분은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계셨다. 그들에게 배고픔을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품고 계셨다.

인간의 배고픔을 그 누구보다도 걱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졌을 것이다. ‘이분이 하루 종일 시달리시더니 헛소리를 하시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장정만도 5000명이라면 적어도 어린이와 부녀자를 합하면 만 명도 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외딴 곳에서 어떻게 빵을 구하여 먹일 수 있겠는가! 제자들에게는 불가능한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다. 인간과 예수님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오라 하셨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수천 명, 아니 만여 명의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이셨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던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구약성서도 하느님의 능력으로 빵이 많아진 기적이 나온다. 엘리사는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였다. 엘리야는 사렙다 마을 과부에게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그러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5000명을 먹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범상치 않음을, 즉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배고픈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 분은 우리 교회더러, 우리 각자에게, 먹을 것을 배고픈 자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것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작은 것으로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여주신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예수님은 그들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나에게 주라!”
우리는 가난할 수도 있다. 우리가 동전 한 닢, 1000원 짜리 지폐를 들고 이것으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킬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정성을 가지고 큰 기적을 이루어내신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셨던 예수님처럼 그렇게 배고픈 자를 가엾게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기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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