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3.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 1
09/17/18  

R과 나는 그래도 이탈리아 젤라토를 맛있게 먹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불쾌한 경험 때문에 맛도 없었고 솔직히 먹고 싶지도 않았다. 양도 엄청나게 많아서 손 안에서 끈적거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포기하고 쓰레기 통에 넣어 버렸다. 그 때, 젤라토는 맛도 맛이지만 그 고운 색깔을 감상하며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달달하게 먹어야 비로소 제 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하거나 애통해 하면서 굳은 얼굴로 젤라토를 먹고 있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가?



허탈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우리는 눈 앞에 나온 조토의 종탑을 향해 달려갔다. 조토의 종탑은 이탈리아 어로 ‘캄파닐레 (Campanile)’ 라고 부르는, 문자 그대로 종이 있는 높은 탑이다. 두오모 대성당과 짝을 이루는 건물로 1334년에 당시 피렌체 최고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ne)가 원래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뒤를 이어 설계와 건축을 맡았다. 당시 조토는 67세 였다고 하는데 요즘 나이로도 적지 않은 나이니까 그 당시에는 아마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조토를 화가로서만 생각해 오다가 ‘꽃의 성모 마리아 대 성당’ 옆에 그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종탑을 세운 건축가였다는 것을 깨달으니 새삼 그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종탑은 네모난 식빵을 세워 놓은 듯한 좁은 직사각형으로 84.7 미터 높이이다. 종탑의 네 면은 각 14. 45 미터이고, 탑은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토는 건축가와 화가로서의 역량을 총 동원해 핑크와 은빛, 그리고 에메랄드 빛 대리석으로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 조각을 새겨 넣은 아름다운 탑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완성한 것은 1층뿐이었고 4년 후에 조토가 죽었을 때 후임 건축가 안드레아 피사노가 조토의 디자인을 충실히 따라 1359년에 완성했다.


우리는 또 한 번 예매 티켓을 들고 입구로 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문 앞에는 짙은 눈썹의 잘 생긴 안내원이 서 있었다. 우리는 새치기 모녀로 또 오인 받을까 봐줄 선 사람들이 티켓을 들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 보았다. 들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줄 앞으로 가 안내원에게 가까이 갔다. 그런데 눈썹을 찡그린 안내원이 그렇게 퉁명스럽고 무뚝뚝할 수가 없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줄 선 사람들 말고도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와서 그에게 묻는데 정확하게 세 가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표 어디서 사냐? 표 얼마냐? 몇 시까지 문 여냐?’ 그는 온 세계로부터 몰려 온 관광객들에게 하루 종일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한다. 원래 상냥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똑같은 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변할 것 같았다.



줄 앞으로 가 당당하게 예매 티켓을 보여주니 안내원이 들어 가라고 손짓을 했다. 드디어 입장. 티켓을 스캔하고 들어 가자 그대로 계단이 시작되었다. 이 계단은 빙빙 도는 쿠폴라 계단과 달리 그냥 직사각형으로 쭉 올라간다. 아침에 경험이 있는지라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처음부터 숨이 컥컥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 이게 아닌데. 잘못 들어 왔구나’ 라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이대로 가다간 죽겠다 싶고 그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종탑의 첫 번째 층이 나와서 겨우 살아났다. 종탑은 그냥 수직으로 올라가고 가운데가 뚫려 있는 구조이다. 각 층마다 벽에 발코니같은 구조물이 있어서 쉴 수도 있고 밖을 내다 볼 수가 있지만 가운데가 휭하니 뚫려 있어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지금은 그 뚫린 부분에 쇠 그물망을 설치해 놓아서 용감한 사람이라면 그 위를 걸어 다닐 수도 있지만 그대로 뚫려 있었던 그 옛날에는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았다.  1 층에서 겨우 숨을 돌리고 또 계단을 올라간다. 금방 다시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상태가 또 습격. 쓰러질 것 같으면 또 한 층이 나오고, 잠시 아찔한 밑을 내려다 보며 쉬다가 다시 올라가면 또 숨이 막히고, 그렇게 올라가기를 3번, 이젠 정말 죽어도 못 올라간다 생각할 때 정상이 나타났다. 414 계단. 84.7 미터. 쿠폴라보다 낮은데 훨씬 더 힘들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숨을 몰아 쉬며 올라 간 종탑의 정상은 탑 모양처럼 정사각형이었고 빙 둘러 철조망이 처져 있었다. 훨씬 더 높은 쿠폴라에는 쇠 난간만 있는데 이 곳에는 왜 높은 철조망을 설치했을까? R과 나는 숨을 고르면서 두오모 쿠폴라를 올려다보고 눈 아래 펼쳐진 피렌체를 내려다 보았다. 멀리 토스카나 언덕들이 르네상스 그림에 나오는 풍경화 그 자체이다. 똑같이 생겼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상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본대로 그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언덕 밑에는 석양이 내리고 있는 피렌체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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