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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놓을 때 업장 사라지고 좋은 부처님 씨앗 자라난다
09/19/22  

업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보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또한 일체유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장을 말할 때 ‘자업자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통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내가 힘든 것은 그만큼 업장이 두텁다는 증거에 다름 아닙니다.

이 업장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행과 불행, 대소, 노소, 희로애락, 극락과 지옥 등 어느 하나가 생기면 다른 쪽도 따라서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것만을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나쁜 것만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반대되는 둘을 다같이 없애는 것이 바로 해탈이고 피안이며 성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과 형상, 욕심과 집착, 정에서 떨어져서 무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두터운 업장이 사라지고 좋은 불종자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업장이 사라지고 좋은 불종자가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을 해서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시를 비롯한 육바라밀을 통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음은 심리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없어지는 것처럼 마음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따라서 행복을 구하려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의 불행한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자명해집니다. 더불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비교되는 마음이 항상 교차되기 때문에 행과 불행도 반복된다는데 있습니다. 마음이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자신보다 더 크고 높은 쪽만 바라보면 불행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작고 낮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불행도 사라지게 됩니다. 행복하고 불행한 마음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생사를 없애는 척도라 할 수 있는데, 생각이란 것 역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서 시시비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행과 불행이 교차하고 생과 사가 거듭되어 윤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업이란 이렇게 상대적인 생각과 행동이 반복된 내용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보고 듣는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돈 많고, 권세와 명예가 높다는 것은 모양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내 마음이 상대적으로 불편해진 것입니다. 결국 잘되고 못 되는 것, 잘 살고 못사는 것도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내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만드는 것인데, 내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은 수많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망상을 하며 습관적으로 버릇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각자의 업입니다.

그렇다면 업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인데,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 중에서도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염불을 하거나 화두를 들어 참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행과 더불어 해야 할 중요한 것이 보시입니다. 탐진치 삼독심의 업장을 녹이고 바꿀 수 있으려면,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생각을 비워서 업을 없애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자꾸 비워야 하는데, 이때 보시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비워 나가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업도 사라지고 상대적 생각도 없애게 됨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까지 해탈하게 됩니다.

‘내 팔자가 어떻다’거나 ‘내 운명이 어떻다’고 비관하고 의기소침해 하지 마시고, 오늘부터는 수행하고 보시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업장을 녹여서 인생의 항로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진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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