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4.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 2
09/24/18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받아 따뜻한 테라코타 빛 속에 잠겨 있는 피렌체를 홀린 듯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그곳에서 어떤 청년이 함께 온 아가씨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반지를 꺼내 든 청년과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가씨 둘 다 너무나 어여뻤다. 어느 나라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동구권 언어 같음) 아가씨가 결혼 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청년이 키스를 퍼 붓고는 그녀를 번쩍 들어 그 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축하 해 주었다. 우리도 박수를 쳤다. 피렌체까지 와 조토의 종탑 위에서 결혼을 약속한 로맨틱한 젊은 커플의 앞 날에 무한한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며.



계속되는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아 제법 마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옆에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누군가 “Can you take a picture for me? (사진 좀 찍어 주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돌아 보니 예쁜 한국인 아가씨가 카메라를 들고 조신하게 서 있었다. 한국인이라고 단정지은 이유는 그녀가 세련되고 예쁘기도 했지만, 무언가 한국인이라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요! 한국 아가씨?” 내가 묻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어머나, 한국분이세요?” 하고 되묻는다. 그녀의 이름은 이꽃미. 나이는 스물 여섯 살. 프랑스에 사는 언니를 방문 중에 혼자 피렌체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깨에 맨 가방에 체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핸드폰도 그 중 하나에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에 오면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가방이며 전화, 카메라, 모든 것에 체인을 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당했다고 말하니 그녀는 눈이 둥그래졌고 R은 옆에 있다가 저 멀리로 도망가 버렸다. 꽃미는 딸이 엄마랑 여행하는 것이 너무 부럽다며 자기도 이 아름다운 피렌체에 엄마랑 다시 오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엄마가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 계단을 오르실 수 있을 때 빨리 오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리고 좋은데 시집 가기를 축복하고 헤어졌다.



R과 나는 석양이 짙어지는 종탑의 정상에서 다시 한 번 피렌체를 둘러 보았다. 종탑을 1층까지만 짓고 세상을 떠난 조토는 완성된 종탑의 정상 위에 서 보지도 못했다. 나는 피렌체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세로부터 르네상스로 가는 길을 밝혔던 조토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R과 나는 당신이 지어 올린 이 아름다운 캄파닐레 정상에 서서 피렌체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21세기 입니다. ’ 그리고 옆에서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딸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종탑을 내려 오니 6시 30 분.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한다. 오늘은 맛있는 곳을 찾아 가 제대로 먹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곳 말고 피렌체 주민들이 먹으러 가는 현지 숨은 맛집으로.  트라토리아 아니타(Trattoria Anita) 라는 곳으로 정했다.



구글 맵을 보면서 찾아가는 길에 지나가는 피렌체 골목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대로 작품이 될 정도로 중세 시가의 정취와 운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느 곳에나 미술이 넘쳐나고, 디자인이 흐르고, 색채가 풍성하니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란 이탈리아인들이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끝없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을 물려받지 않았는가.



레스토랑을 찾아 걸어가는 중에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렸다. 건물 곳곳에 잘 배치해 놓은 조명들이 켜졌다. 21세기 현대 도시 느낌이 전혀 없이 중세의 어느 달밤을 연상시키는 듯 환하면서도 은근했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넘쳐 흘렀고, 밤의 피렌체는 정다우면서 아늑하게 다가왔다. 어디선가 갑자기 어둠을 뚫고, 확성기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음악이 멀리서 들려 왔다. “보올 라아 레에, 오오 오오---“ 미국 가수 딘 마틴의 ‘볼라레’가 피렌체 밤거리에 흐른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가’ 하고 둘러 보는데 길 한가운데로 웬 자전거가 끄는 인력거 같은 수레가 달려 오고 있었다. 수레에 설치한 확성기에서 볼라레 노래가 온 시가지를 울리며 흘러 나오고, 자전거를 모는 이탈리아 아저씨는 입이 째지게 웃으며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른다. 관광객을 태우고 피렌체 중심지를 한 바퀴 도는 일종의 관광 택시 자전거 수레였다. 지붕 없이 오픈 되어 있는 수레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요란한 행차가 매우 겸연쩍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견고히 서 있는 이 건물들 사이로 온갖 차량이 지나가고 하루 종일 셀 수 없는 인파가 지나간다. 역사 유적을 무사히 보존하는 것이 피렌체 시당국의 큰, 아니 제일 큰 과제일 것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