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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트라토리아 아니타
10/01/18  

트라토리아 아니타 (Trattoria Anita). 주소 Via del Parlascio 2r. 구글맵에 우피찌미술관 근처라고 나온다. 낯선 이탈리아어 길 이름이 계속 떠 올랐다. 화살표만 보면서 골목길을 끝없이 돌아 나간 끝에 작은 골목길 코너에 있는 아담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중후한 중세 건물에 작은 정문이 한쪽으로 나 있고 다른 한쪽에는 조그만 창문이 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6시 50분경. 7시에 오픈하는 레스토랑은 아직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오픈하면 순서대로 입장한다고 했으니 한적한 골목길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동안 어디서 모여드는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이 오픈하기 딱 2분 전이었다. 관광객 같지는 않고 동네 주민들 같은 인상. 자연스레 모여들어서 레스토랑 문 앞에서 담소를 나눈다. 정각 7시에 정문 위에 붙어 있는 네온 사인에 파랗게 불이 들어 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둥글둥글하게 생긴 웨이터가 나와서 “부오나 세라 (Buona Sera)” 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순서대로 입장’ 했다. 조촐한 실내에 아주 오래 된 시골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 안에서도 웨이터들이 ‘부오나 세라!’ 하고 맞아 주는데 얼굴이 다 비슷했다. 금방 레스토랑 안이 꽉 차고 붐비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방이 보이는 쪽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머리가 약간 셌으며 눈, 코, 입, 귀가 다 커서 어쩐지 조랑말같은 인상의 웨이터가 와서 인사를 한다. 과하게 반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덤덤한 매너이다. 하지만 우리가 와인 반 캬라프를 시키고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면서 점점 친절 모드로 바뀌어 갔다. 주방 앞 바구니에 담아 둔 담백한 맛의 커다란 이탈리아 빵을 손님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썰어 갖다 준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애피타이저로 프로슈토와 멜론을 먼저 먹고, 멧돼지 소스로 요리한 피치(Pici) 파스타, 로스트 치킨, 시금치와 아스파라거스 등을 시켜 실컷 먹었다. 제일 맛있었던 것은 로스트 치킨. 닭고기가 딱 한 조각 나오는데 평생 먹은 닭 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거창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지만 마치 할머니가 소박하게 정성 들여 요리한 것 같은 심플한 이탈리아 가정식. 전체적으로 값도 저렴하고 맛도 훌륭하다. 아주 만족했다.



후식으로는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켰다. 와인을 마시고 약간 볼이 달아 오른 R이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미안해. 아침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해서 지금까지 얘기를 못 했어!” 아이는 핑크 빛 볼이 빨개지면서 급기야 눈물을 글썽거렸다. “왜! 뭔데? 얘기해 봐!” 당황한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엄마! 내일 모레가 어머니 날인데 내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서 엄마한테 선물도 하나 준비 못 하고…. 원래는 오늘 내가 엄마한테 저녁을 살려고 했는데 계산도 못 하고…. 엄마! 너무 너무 미안해!” 목이 메며 말을 마친 R은 이제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일 모레가 어머니 날이니? 그렇구나! 엄마는 정신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어!” 상심한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잊지 않았었다. 지갑이 없어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에게 부담을 줄까 봐 일체 언급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R은 그동안 미안해 하며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너무 가엾어서 자리를 옮겨 앉아 R을 꼭 끌어 안았다.
“괜찮아! 네가 엄마하고 함께 여기 피렌체에 온 것이 어머니 날 선물이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친구보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딸의 마음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조랑말같은 웨이터가 다가왔다. 우리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핸드폰을 받아 들고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웃긴다.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이 잘 나왔다. “한국에서 왔지요?” 서투른 영어로 뜬금없이 묻는다. “아니요, 미국에서 왔어요” “아, 그래요? 그래도 원래 한국 사람이죠?” “그건 맞아요. 어떻게 알아요?” “아시아인 관광객 들 중에서 한국 여성분들이 제일 예뻐요!” 우리 기분을 맞춰 주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기 싫은 말은 아니다.  우리는 웃으며 되물었다. “여기 웨이터들 다 비슷하게 생겼어요. 가족들이죠?” “우리 다 형제예요. 저기가 지아니(Giani), 저기는 마우리찌오(Maurizio), 저는 니콜라(Nicola) 입니다.” 니콜라는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바람에 더 조랑말같이 보였지만 이름을 알게 되니 한결 친근해졌다.



니콜라 형제가 운영하는 트라토리아 아니타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골목길을 돌아 큰 길로 나왔다. 아르노 강변을 따라 숙소로 돌아 가는 길에 강 옆에 우피찌미술관 건물이 나왔다. 내일 10시로 티켓이 예약 되어 있다.  기대가 충만해서 아름다운 미술관 건물을 보며 천천히 숙소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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