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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라(요한복음 7:1-24)
01/09/23  

‘다 같은 살색입니다!’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살색, 흰색, 검정색 크레파스가 부채꼴을 이루며 나란히 놓여있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다 같은 살색입니다!”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캠페인 광고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도 옳은 관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건강하건 그렇지 못하건, 모두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옳지 못한 판단을 하게 되고, 그 판단에 근거해 옳지 못한 일을 당당하게 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른 판단을 가지고 바른 일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다가도 곧 변질되기 쉬운 것이 바로 사람이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는 일과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회의 일들을 잘 살펴보고 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바른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는가를 늘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24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그들의 동기를 파헤치시며 바른 판단을 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아무도 모세가 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할례는 난지 8일만에 행하여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그날이 안식일과 겹치게 되면 안식일 일지라도 할례를 행했습니다(22). 이렇게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하물며 38년 된 병자를 고침으로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은 얼마나 잘한 일입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일을 하신 예수님을 정죄하며 노여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23).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과연 올바른 신앙의 판단기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선한 일을 많이 한다, 잘 가르친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 등의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의 판단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성도의 봉사와 섬김의 모습, 예배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어떤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떨까? 하나님께서 칭찬하실까? 하나님께서 바르다, 잘했다고 하실까? 이것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의의 판단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나, 또는 사회의 통념,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이것이 옳은가 아닌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판단할 때 예수님의 겉모습, 학력과 출신 등을 기준 잣대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타이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학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문도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배척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권위주의에 기초해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에 기초해 판단하고, 말씀에 기초해 믿고 순종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그 사람이나 그의 행동, 또는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이 현재 가고 있는 성령의 방향에 합하는가, 아니면 거스르는가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저 사람의 열심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열심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성령님께로부터 나온 것인가를 잘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허락하시고, 진리의 말씀 위에선 바른 판단을 통해 성령님의 역사가 생명력 있게 우리 위에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성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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