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홈으로 종교
상처 없이 영광 없다 (마르-45)
10/08/18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슬픈 사람에게는 세상이 슬프게 보이고 기쁜 사람에게는 기쁘게 보입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불렀던 노래는 슬프고 애절하며 한이 많은 곡들이었습니다. 문학도 예술도 다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해 줍니다. 성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에도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고 약속의 땅에 정착한 뒤에도 끊임없이 열강의 세력 속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유배생활에서 엄청난 고난을 체험합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바라봤던 하느님은 고난받는 하느님이었습니다. 백성 자신이 고난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의 상도 역시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이사야서의 '야훼의 종'의 노래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종은 웬일인지 억울하게 당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반역죄로 몰려서 죄없이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것은 매우 처참한 죽음입니다. 그리고 운명론자라면 전생에 죄가 많았거나 팔자가 사나운 탓이었기 때문에 그런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짓궂게도 사정없이 때리고 찌르는 아픔과 슬픔으로 표현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애정이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로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봐도 그렇고 순교자들이나 성인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난이라는 것은 다 뜻이 있어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는 다 뜻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뜻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답답하고 창피한 현실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내고 난 뒤에 돌아보면 그때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은 대개 조금 늦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쇠는 불 속에서 더욱 강하게 단련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때리고 찔러서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상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아픔은 감수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둘째 자리와 셋째 자리를 염치없게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별 수고도 하지 않고 영광과 명예의 자리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그 형제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봉사하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잠을 적게 자고 또 적게 놀면서 공부해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참다운 은혜를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처럼 밑으로 내려 가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십자가가 아무리 크다 해도 무겁지 않은 것입니다. 대개 불평과 비난이 많은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비난과 욕설이 나오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속에는 미움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도 불행해질 뿐입니다.

 

꼴찌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크게 상하게 되는 아픔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고난과 또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광의 상을 주시려 하십니다. 따라서 고난의 잔을 용기있게 마시도록 합시다. 그것의 모습은 고난의 잔을 닮아있지만 그 속에 든 것은 바로 은혜라는 이름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강길웅 신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