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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7. 우피찌미술관 2
10/15/18  

메디치가의 초상화가 끝없이 전시되어 있는 회랑에는 또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품들이 끝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조각들을 감상하며 왼쪽으로 돌면 그림 전시실이 시작된다. 전시실은 다음 전시실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중세시대부터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 그림의 변천사를 읽을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는데 그것이 애초 메디치 가문이 미술품 수집을 시작할 때부터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력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미술품들을 수집했다. 특히 조각의 경우,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작품들을 발굴하는 대로 다 수집해 왔는데 땅 속에서 파 내거나 물에서 건진 조각품 중에는 파손된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서진 조각상을 전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당대의 전문가들이 정확하게 복사본을 만들어 전시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조각상의 상당수가 천 년 내지 이 천 년이 넘는 오리지널을 500여 년 전의 르네상스 전문가가 복사 및 복원한 것이니 그 작품들은 이중으로 고전인 셈이다.  

 

R과 나는 왼쪽 첫 전시실로 들어 갔다. 중세기.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한 쪽 벽을 눈부시게 빛내고 있는 시몬 마르띠니(Simon Martini)의 수태고지. 그야말로 벽 속으로부터 은총의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 금박의 그림이 지닌 엄청난 존재감을 실감할 수 없었는데 황금빛으로 빛나는 실물을 보니 ‘진리와 미와 완벽함이 여기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라는 감동이 밀려 왔다. 우리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시몬 마르띠니!’ 하고 나직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동감이었다.

 

계속되는 중세기 그림들을 보며 지나간다.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나온다. 교회와 궁전, 그 외의 공적인 장소에 걸려 있었던 모든 그림들은 전지전능한 신의 영광을 나타냈고, 그 신에게 권한을 부여 받은 지배계급의 절대적인 권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창 몰두해 보고 있는데 한국 아줌마 한 쌍이 나타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담한 체구의 아줌마들은 둘 다 똑같이 짧은 단발머리에 파마를 했고 둘이 함께 맞춰 입은 듯이 똑같은 스타일의 자루 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둘이서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인데, 우피찌미술관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아줌마들이 그야말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찍으면서 ‘저거 찍었어?’, ‘빨리 찍어, 빨리’, ‘저거 빠졌네’ 라고 연신 한국어로 중얼거렸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일 때문에 우피찌미술관의 미술품들을 찍으러 왔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든지 작품 사진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동동 뛰면서 직접 모든 작품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찍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거의 필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림들 앞에는 항상 관람객들이 모여 서 있었지만 아줌마들은 예사로 그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사진을 찍고 남이 보고 있는데 용감하게 그 앞에 쑤시고 들어가 그 사람을 밀어내고 찍기도 했다. 하도 이상해서 왜 저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귀한 그림들을 보면서 그 순간을 기록해 우피찌미술관 관람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와중에 정작 그 작품들을 자신의 두 눈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줌마들은 여전히 곳곳에 출몰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몸이 우피찌미술관에 이미 와 있건만 그녀들은 아직도 카메라의 눈을 통해 그림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시실이 계속 연결되며 중세기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로렌쪼 크레디(Lorenzo Credi)와 보티첼리(Botticelli) 전시실이 나왔다! 보티첼리의 그림 ‘석류의 마돈나’가 걸려 있다. 기독교에서 부활과 영생의 희망을 상징하는 석류를 곱게 그려 아기 예수의 손에 들려 안고,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그림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 한없이 우아하고, 인간의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선함의 극치를 그려낸 듯했다. 그 매혹의 아우라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관람객들은 그림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핸드폰 아줌마들은 ‘찍어, 빨리 찍어!’ 라고 외치면서 다람쥐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인간의 작품이 아닌 것 같은 환상적인 그림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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