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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18. 우피찌미술관 3
10/22/18  

 ‘석류의 마돈나’가 있는 전시실에는 ‘비너스의 탄생’도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그림이었다. 평생 사진으로만 보던 그 유명한 그림을 실제로 보니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림은 거대한 금박 액자에 고이 모셔져 있고 그 앞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람객들이 숨을 죽이고 경외의 눈길로 화면 속 신화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숨소리와 속삭임이 간혹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R은 어디 있을까?

 

R은 다음 전시실에 있었다. ‘프리마베라 (Primavera)’ 그림 앞에 서 있었다. ‘프리마베라’는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그림이다. 벽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관람객의 키보다 높이 걸려 있어 약간 올려다 보아야 한다. 어두운 숲 속에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가운데 비너스와 봄의 여신 플로라가 있고, 숲의 요정 클로리스, 바람의 신 제피루스, 큐피드, 세 여신, 머큐리 등이 등장한다. 온 세상에 가득 찬 생명력과 함께 다가오는 봄을 알린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500종이 넘는 식물과 190 종의 꽃이 그려져 있는 거대한 식물도감이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함은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프리마베라’ 앞에는 관람객들이 빼곡하게 모여서 떠날 줄을 몰랐다. R도 그 속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R은 오늘 우연히도 우피찌미술관 벽 색깔과 똑같은 은은한 올리브 빛 녹색 옷을 입고 와서 그림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내가 상상했던 장면은 ‘프리마베라’ 앞에 R을 세워 놓고 찬찬히 보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불가능했다. 관람객들 속에 섞여 있는 R의 옆 모습을 한 번 보고 그림을 한 번 보고 아쉬운 한숨만 내 쉬었다. “저기 앞에 나가서 그림 앞에 좀 서 봐. 잠깐 사진이라도 찍자.” 내가 속삭이자 R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그림 앞에 버티고 서..….” 그러나 엄마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는 조금씩 앞으로 나갔는데 완전히 앞에 서지는 못하고 그림 오른쪽 옆으로 겨우 섰다.

 

나는 그림 가까이 간 딸의 모습을 눈동자 가득 담았다. ‘우리 딸! 네가 ‘플로라’구나! 온 세상에 퍼져가는 생명처럼 힘차게 뻗어 나가길 바래.’ ‘이토록 어여쁘고 청순한 네 모습, 엄마가 영원히 기억 할게. 한없이 피어나길 바래.’ ‘너의 삶이 언제나 봄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그 짧은 순간에 딸을 위한 수많은 바람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무 살 딸의 화사한 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R은 그림 앞에서 수줍게 미소 짓는다. 아니, 내가 그렇게 착각했는지 모른다. “엄마!” 하고 R이 재촉했기 때문이다. “어, 사진!” 나는 당황해서 얼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R은 재빨리 이쪽으로 다시 건너 왔다. 나중에 보니 그림만 커다랗게 나오고 R은 오른쪽 옆에서 고개만 삐쭉 내밀고 있는 이상한 사진이 나왔다.

 

보티첼리 전시실을 나와서 계속 둘러 본다. 전시실과 전시실의 사이에 회랑을 지나가면 옆에 난 넓은 창으로 푸르게 흐르는 아르노강이 보이고, 그 위에  폰테 베키오가 보이면서 그 정경은 그대로 그림 엽서가 되었다.

 

어느새 피곤하고 배고프기 시작한 지 한참이 되었다. 둘 다 기운이 빠져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커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커피 냄새를 따라 가서 카페테리아 사인을 발견했다. 삼층 발코니 옥상 미술관 카페. 바로 앞에 베키오 궁전 ‘팔라쪼 베키오 (Palazzo Vecchio)’가 보였다. 우피찌미술관과 베키오궁전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방에 흩어진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비둘기와 참새가 연신 날아 들었다.

 

커피와 물, 토스트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나니 베키오 궁전 종탑에서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정오. 푸른 하늘을 이고 온 천지를 울리는 종소리가 피렌체 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한참 먹고 나니 기운이 나서 그제야 주위를 돌아 보았다. 온통 관광객 천지이다. 다 먹고 나니 단 것이 먹고 싶어 애플 케이크와 오렌지 주스를 또 시켰다. 단 것을 먹으니 완전히 좋다.

 

계산을 하고 다시 미술관으로 내려 가기로 했다. 입구 계산대로 갔는데 바로 옆에 중국 학생인 듯한 여학생들 4명이 너무 피곤한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다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습고 공감이 가서 계산하면서 살짝 비디오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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