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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20.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2
11/05/18  

베키오궁전은 강력한 도시 국가의 권위와 부강을 과시하기 위해 피렌체공국이 1299년에 건축한 궁전이다. 1540년에 코지모 메디치가 거처를 베키오궁전으로 옮기면서 명실공히 메디치가의 권력을 선포했다. 그후에 다시 거주지를 피티궁전으로 옮기고 행정부처를 모두 우피찌 건물로 이전했지만, 베키오궁전은 우피찌 건물, 폰테 베키오, 그리고 피티궁전까지 연결하는 비밀 통로인 ‘바사리 복도’로 이어져 여전히 중요한 입지적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다 해도 베키오궁전은 그 뜻 그대로 ‘옛 궁전’ 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갔던 우리는 뜻밖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에 넋을 잃었다. 13세기에 이토록 장엄한 대규모 궁전을 건축 했다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재력과 능력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다.

 

제일 궁금했던 곳은 ‘오백인의 방, 살로네 데이 칭퀘첸토’였다. 오늘 관광객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해서 실망했었는데 의외로 이층으로 올라가서 방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오백인의 방’은 베키오 궁전 1층에 자리잡고 있다. 궁전의 중심이 되는 대형 홀인데 길이가 52미터이고 넓이가 23 미터인 직사각형의 방이다. 1494년에 메디치가를 잠시 몰아 내고 권력을 잡았던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공국의 민주정치를 위해 오백 명의 대 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가 함께 모일 수 있기 위해 건축한 공간이다. 사보나롤라가 쫓겨나고 다시 메디치 가가 복귀했을 때는 집정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그 방을 꼭 보고 싶었던 이유는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벽화 ‘앙기아리 전투’ 때문이었다.

 

‘오백인의 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방의 한쪽 벽 전체에 ‘앙기아리 전투’라는 대형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메디치가가 복귀했을 때는 그 벽화를 없애고 지오르지오 바사리에게 그 위에 새 벽화를 그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후세를 위해 거장 다 빈치의 작품을 보존하고 싶었던 바사리가 다 빈치의 벽화 위에 자신의 벽화를 덧그리는 대신 다 빈치의 벽화를 그대로 두고 바로 앞에 또 하나의 벽을 세워 자신의 벽화를 그렸다는 설이 있다. 현대에 들어 와서 바사리 벽화 뒤에 다 빈치의 벽화가 있는지 조사해 보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본격적으로 살펴 보려면 바사리 벽화를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심증만 있을 뿐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벽화가 실제로 발견된다면 ‘21 세기 최고의 미술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층 복도에서 내려다 본 ‘오백인의 방’에는 한창 행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양쪽 벽의 벽화는 잘 볼 수 있었다. 벽화는 거대한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천장에도 천장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오백 인의 방’ 전체는 화려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르네상스인들 오백 명이 모여 열띤 논쟁을 벌이던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다 빈치의 벽화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바사리 벽화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만족하고 궁전 안 쪽으로 더 들어 갔다.

 

베키오궁전은 크게 세 가지 기능을 수행 한 것 같았다. 첫째로 메디치가의 정치 현장, 둘째로 메디치가의 주거지, 그리고 셋째로 방문객을 위한 전시장. 정치를 위한 공간은 ‘오백인의 방’ 외에 이층의 알현실이 있었다. ‘오백인의 방’ 도 대단했지만 메디치 공을 만나 뵙는 알현실인 ‘살라 델 우디엔자 (Sala dell’Udienza)’도 그에 못지 않았다. 온 벽과 천장이 대리석과 순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벽화가 모든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현실로 들어 가려면 조그만 예배실을 지나가야 하는데 ‘시뇨리아 채플’이다. 작은 방이지만 천장에는 삼위일체를 그린 벽화가 벽에는 수태고지를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알현실로 들어가려면 이 예배실에서 기도를 하고 성스럽고 순결한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설계적인 의도가 느껴졌다.

 

천장이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알현실로 들어 갔다. 시각적으로 압도 당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21세기 인간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5백 년 전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무한한 부와 권력을 잡고 있는 메디치 공 앞에 무릎을 꿇고 절대 충성을 맹세했을 것 같았다. 앗,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엄숙한 알현실에 계속 들어 오고 있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숨을 죽이고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떤 중국인 할머니가 간이 의자를 펴 놓고 앉아 있었다. 신발까지 벗고 편하게 다리를 꼬고 있다. 너무 놀란 것은 가방에서 보온 병을 하나 꺼내더니 차를 한 잔 따라서 그윽한 표정으로 마신다. (이 부분에서 중국인으로 짐작했다). 그 곳에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주위에는 알현실을 지키는 가드도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르네상스를 일으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메디치가의 궁전 한가운데 앉아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중국인 할머니. 한 편의 역사 퍼포먼스를 본 기분으로 우리는 알현실을 나와 금박 천장에 백합이 가득 그려져 있는 ‘백합방’을 지나서 가장 큰 놀라움을 선사한 다음 방으로 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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