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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웨스트민스터 사원2
04/23/18  |  조회:194  

웨스트민스터 사원2

 

  제레미 아이언스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역대 왕과 왕비들왕족들의 묘를 차례대로 방문했다중세의 그림자가 육중하게 드리워져 있는 그들의 묘지는 영국의 역사를 그대로증언하는 듯했다죽어서도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는 그들의 자취는 엄숙하고 장엄했지만 계속둘러보는 동안 매우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엘리자베스 1 여왕의 묘에는 메리 여왕의 묘가 아래 위로 합장되어 있었다대리석 조각으로 생전의 모습을 재현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석관 밑에 메리 여왕의 묘가  있는 것이다 유명한 튜더 왕조 헨리 8 왕이 아버지였던 이복 자매 여왕들이다메리 여왕은 헨리 8세와 그의 첫째 왕비 아라곤의 캐더린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자식이었고바티칸의 교황을 거역하면서까지 헨리 8세가 캐더린과 억지로 이혼하고 천일의 이었던  볼린과 결혼해서 낳은 딸이 엘리자베스 1 여왕이었다헨리 8세가 죽고 적자인 메리 여왕이 등극하자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 공주의 목숨은 풍전등화 같았다권좌 다툼의 싹을 없애기 위해 죽여버리라는신하들의 아우성을 끝끝내 물리치고 메리 여왕은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자손 없이 메리 여왕이 죽고 엘리자베스 공주는 엘리자베스 1 여왕이 되어 대영제국의 거대한 장을 열게 된다.

 

원래 메리 여왕은 다른 곳에 묻혀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1 여왕의 유언에 따라 아래 위로 합장되었다자매의 정을 생각해 온정을 베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가만히 생각해 보면 영원히 자기의 밑에 머무르라는 엘리자베스 1 여왕의 응징인  같기도  슬며시 소름이 돋기도했다.

 

 하나 흥미로웠던 묘는 메리 오브 스코틀랜드 여왕의 묘였다메리 오브 스코틀랜드 여왕은개신교 신자였던 엘리자베스 1  여왕의 재위 기간 동안 내내 가톨릭 교도인 자신이 정통한영국의 여왕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녀는 정치 투쟁에 휘말려 오히려 엘리자베스 1 여왕의 보호를 간청했다가 18  동안 감금 생활을  끝에 역적 죄로 몰려 처형되었다엘리자베스 1 여왕 역시 자손 없이 죽어서 결국에는 메리 오브 스코틀랜드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즉위하게 된다제임스 6세는 즉위하자 마자 묘도 없이 매장된 어머니를 복권시켜 당당히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여왕의 신분으로 묘를 만들어 모신다효심이 지극했던 아들의 정성으로성대하게 왕들의 사원에 입성한 메리 오브 스코틀랜드의 석관을 나는 유심히 보았다화려하게 조각된 석관이었지만 대리석으로 변해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에 거미줄이 하나 매달려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왕좌를 다투며 치열했던 그때의 역사가  무덤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고 이제  무덤 위엔 거미줄만 흔들리고 있다가슴이 먹먹했다. R 나는 어깨를 맞대고  앞에 한참  있었다.

 

코너마다 끝없이 나오는 왕과 왕비들의 묘를  지나고 우리는 어느덧 웨스트민스터 사원의중심인 네이브로 나오게 되었다그곳엔 예상하지 못했던그러나  어느 왕보다  귀하게 모셔진  사람의 묘가 있었다.

 

그것은 이름 모를 병사의 ’ 였다웨스트민스터사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오고 사원의 중심이라고   있는 네이브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대리석으로  바닥에 검은 벨기에  직사각형 대리석으로 꾸며진 묘이다 주위는 빨간 장미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그의 이름나이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단지 아는 것은  사람이  1 세계 대전  조국을 위하여 전장에나가 프랑스 어딘가에서 목숨을 바친 영국 군인이었다는 것뿐이다.

 

 1  세계 대전 중에 데이비드 레일튼이라는 영국인 종군 목사가 있었다그는 전장에서 셀수 없는 영국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묘지도 없이 땅에 묻히는 것을 보고 고국에 건의를 했다. 스러져간 청년들의 유해 중에 하나를 왕들이 잠들어 있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장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십만 명의 영혼을 기념하자는 것이었다그의 건의는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프랑스 여러 전투 현장에서 발굴한 6 구의 이름 모를 유해가 관에 실려 영국으로 모셔져 왔다.도착한 6개의 관은 영국 국기 유니온 잭으로 감싸졌다그리고 와이어트 준장이라는 장군이 눈을 감고 무작위로  중의 하나에 손을 얹었다선택되지 않은 관은 켄달에 있는 묘지에 안장되었다선택된 관은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국장을 치르고 웨스트민스터사원 현재의 자리에 안장되었다 국민이 애도하였으며특히 전쟁에 남편과 아들 모두를 잃은여인 100명이 초대되어 이름 모를 병사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슬픔을 위로 받았다.

 

 이름 모를 병사의 묘는 영국 국민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하나님과 국왕과 조국을 위해한 인간이 바칠  있는 가장 귀한  자신의 목숨을 바친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현장이다.정의와 자유를 위해 희생한 그를 영국 왕들 사이에 안장함으로써 국민이 개인에게 바칠  있는 최고의 예우를 갖춘 것이다.

 

그때부터 대대로 왕실에서 결혼하는 신부는 결혼식 다음날  묘에 자신의 부케를 헌정한다. 전통을 지킨 가장 최근의 신부는 윌리엄 왕세손  케이트 미들턴 이었다모든 행사에서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붉은 카펫을  때도   위에는   없다웨스트민스터사원의 대리석바닥에는 수많은 묘가 안장되어 있고사람들은 자유롭게  위로 다닐  있지만 하나 이묘 위로는 밟고 지나갈  없다.

 

영국 국민이 사랑과 존경을 담아 영원히 애도하는   사람이름 모를 병사그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영국 군인들을 대표한다제레미 아이언스가 설명해주는 이름 모를 병사의 ’ 사연을 들으며  나는 한동안 움직일  없었다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우리도  앞에서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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