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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21.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3
11/12/18  

‘백합방’을 지나 들어간 ‘지도의 방(Sala delle Carte Geografiche)’은 내가 평생 살면서 들어가 본 가장 경이로운 방 중에 하나였다. 코지모 메디치 1세가 비전을 세우고 당시 최고의 화가이며 건축가였던 조르지오 바사리가 설계와 건축을 맡았던 ‘지도의 방’은 말 그대로 지도를 그려 전시한 방이다.

 

‘백합방’에서 연결되는 문으로 들어가면 방 한가운데 지름 2미터가 넘는 대형 철 지구본이 보인다. 사면의 벽에는 나무로 만든 캐비넷 53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캐비넷 53개의 문에 전 세계 각 지역을 그린 지도 53장이 그려져 있다. 세계 지도가 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가 이 세상과 우주를 한눈에 보며 통찰하고자 했던 한 명의 군주에 의해 5 백 년 전에 진행되고 실현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원래 이 방은 코지모 1세가 소유한 가장 중요하고, 진귀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관하고, 그가 지녔던 방대한 과학 지식을 드러내기 위해 디자인 되었다고 한다. 처음 방이 만들어졌을 때는 각 캐비넷 문에 그려져 있는 지도 외에 그 지도에 해당하는 땅의 고유 동물들과 식물들이 밑 칸에 그려져 있었고, 캐비넷 위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들의 초상화 3 백 점이 그려져 있었다. 천장에는 우주를 나타내는 천장화로부터 또 하나의 지구본이 매달려 있어서 바닥에 설치된 지구본과 함께 우주와 지상의 세계를 나타냈다. 바닥에 설치된 지구본은 당시에 세계 최대 크기 지구본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천장화와 천장 지구본은 없어졌고, 캐비넷 위의 초상화 3백점은 우피찌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피찌 미술관에 들어가면서 제일 처음 본 끝없는 초상화의 행렬이 이 곳에서 옮겨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R과 나는 이 놀라운 방에서 캐비넷 위의 지도를 한 장 한 장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대부분의 지도들은 1563년에서 1586년 사이에 걸쳐 두 명의 화가에 의해 그려졌다고 한다. 당시의 천문학 및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최대한 정확하게 그렸다고 하는데 2세기 천문학자 프톨레미를 참고했고 중국이나 아메리카 같은 신대륙들은 그 당시 신대륙 탐험에 의해 새로 쏟아져 나오는 지리학적 발견에 근거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지도를 한 칸씩 보면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한국이 그려져 있는 지도가 있는지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려져 있었다. 중국 대륙과 섬나라 일본이 크게 그려져 있는 아시아 지도 속에 중국 땅에 붙어 있는 윤곽이 희미한 토끼 모양으로. 이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1563년은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보다 거의 30년 전이다. 동방의 고요한 나라가 잠을 자고 있었던 그 옛날에 세상의 반대쪽에 있는 반도 이탈리아의 한 공국에서는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겸비한 한 군주가 이미 온 세계의 지리를 파악하고 손안에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16세기 후반의 이탈리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리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이 ‘지도의 방’은 그 지식을 아낌없이 과시하며 우주와 세계의 중심에 선 군주를 부각시키는 능력과 야심의 결정체였던 셈이다. 코지모 1세의 초상화를 이미 보아서 얼굴이 눈 앞에 떠 오르는데 그 냉철하고 강인하게 생긴 군주가 5 백 년 전에 바로 이  ‘지도의 방’에서 지구본을 돌리는 광경을 상상하니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R과 나는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경험한 ‘지도의 방’에서 나왔다. 놀란 가슴을 잡고 우리는 계속해서 코지모 1세의 부인 엘리노어의 공간을 둘러 보았다. 넓고 환한 왕비의 침실에는 정교한 수도 시설과 실내 화장실까지 완벽히 설치되어 있어서 그 옛날 왕족이 누렸던 최고의 라이프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중에 특히 인상깊었던 방은 엘리노어 왕비의 서재 ‘그린 룸’이었다. 에메랄드 그린으로 장식된 조그만 방이었는데 아담한 창이 있고 예쁜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직 왕비를 위해, 그녀가 혼자 있을 방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니, 후세에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자유를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 (Room of one’s own)’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만의 방’을 이미 5 백년 전에 가졌던 코지모 1세의 엘리노어 왕비. 우피찌 미술관에서 보았던 복스럽고 위엄 있는 그녀의 초상화가 떠 올랐다.

 

마지막으로 베키오 종탑에 오르기로 했지만 그만 두었다. 한꺼번에 많이 올라갈 수가 없어서 제한된 인원이 차례로 올라가는데 4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두오모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 보았기 때문에 비슷한 풍경일 것 같아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사실은 너무 피곤하고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기대 이상으로 감명 깊었던 베키오 궁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네 마리의 사자 (Quatro Leoni)’ 식당으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저녁 먹기에는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테이블이 있을 것으로 믿고 서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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