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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당한 세입자 (Evicted Tenants c. 1892)
11/26/18  

에릭 헤닝슨 (Erik Henningsen 1855 – 1930))

(캔버스에 유채 158 cm x 220.5 cm 덴마크 국립 미술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그저 가슴이 먹먹하던 기억이 난다. 아무런 숨김이나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담담한 그림. 그러나 그 속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는 결코 담담할 수 없었다.

 

온 도시가 흰 눈에 덮여 버린 어느 추운 겨울날, 이 가정은 살던 집에서 퇴거 당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하면 쫓겨 난 것이다. 살림살이가 길 거리에 팽개쳐져 있다. 몸이 불편한 듯 얼굴이 창백한 노모는 멍하니 서 있다. 체념의 표정이다. 작은 딸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젊은 아내는 초라한 보따리를 쥐고 저 멀리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옆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퇴거 집행을 하러 온 경찰에게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는 남편은 이 무자비한 퇴거를 항의하는 것일까, 아니면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하는 것일까? 흰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거리에서 눈 치우는 노동자들은 이 일의 전개를 주시하고 있는 듯하나 멀리 옷을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은 아예 이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에릭 헤닝슨은 코펜하겐에서 식료품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미술에 재능을 보이며 화가가 되었다. 1880년에서 189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시의 덴마크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덴마크의 산업혁명은 수많은 시골사람들을  새 직장이 있는 도시로 이주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도시 생활에 힘들게 적응해 나가던 과정의 한 단면을 이 그림이 보여준다.

 

덴마크 국립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았을 때도 겨울이었다. 그림 속 풍경과 똑같이 눈이 쌓인 거리는 차갑고 을씨년스러웠다. 태양은 잿빛 하늘 두꺼운 구름 속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날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고,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집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림 속에 들어가 이 사람들을 정면으로 보라는 듯 바로 눈 높이에 걸려 있던 커다란 그림. 거리로 쫓겨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 보라는 것이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에릭 헤닝슨의 의도였다면 그 의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전달된 것이 분명하다.

 

김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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