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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코톨드 갤러리
04/23/18  |  조회:174  

코톨드 갤러리

 

우리는 다시 튜브를 타고 다음 행선지 코톨드 갤러리로 향했다코톨드 갤러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소장품이 알차고 미술관 자체 분위기가  예쁘다고 들어서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었다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가장 가까이 있어서 미술관 관람 일정 처음 행선지가 되었다

 

갤러리는 소머셋 하우스에 자리하고 있었다소머셋 하우스는 16세기에 지어져 17세기에는 튜더 왕조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19세기에 증축되어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초에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들어  코톨드 미술인스티튜트가 정식으로 코톨드 갤러리를 개장했다

 

하우스라고 해서 조그만 건물을 예상했는데 그야말로 궁전이 앞에 나타나서 탄성을 질렀다중앙 건물 양쪽으로 별관이 이어져 있는 미음자 형태의 건물인데 한가운데 광장에는 ‘춤추는 분수 물을 뿜고 있었다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꼬마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바닥으로부터 간헐적으로 뿜어 나오는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분수가 있는 광장은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고 한다. (겨울의 스케이트장 광경이 영화 ‘러브 액츄얼리 나온다!) R 나는 소머셋 하우스와 분수를 앞에 두고  아름다운 궁전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광장을 가로질러 입장권을 사러 갔다영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거의  무료인데 코톨드 갤러리는 유료 미술관이다입장권을 사고 나서는 갤러리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안으로 들어가서 조그만 정원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구조였다둘이서 왔다 갔다 하니까 청소하는 직원인 듯한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 왔다인도식 액센트가 강한 중년 남성이었다그가 친절하게 안내를  주어서 우리는 무사히 입구를 찾았다둘러보니 경비원  관리인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들이 많은  같았다로스엔젤레스에 히스패닉들이 많이 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코톨드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규모는 크지만 마치 아늑한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우리는 아름다운 나선형의 푸른 계단을 올라갔다오전 내내 걸어 다녀서 이미 다리가 많이 아픈 상태였다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식사를 미처 하지 않아 기운도 없었다계단을 올라가면서 ‘에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R이 팔을 잡고 부축을 해주면서 ‘엄마기운 !’ 라고 속살거렸다. ‘겨우 여행  날인데 이렇게 다리가 아프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절염이 있는 오른쪽 무릎이 무척 아픈 것은 어쩔  없었다이미 오전에 평소에 걷는 양보다10 배는  걸었던  같았다

 

하지만 다리가 아픈 것도무릎이 쑤시는 것도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가 전시관으로 들어서는 순간깡그리  잊었다. 19세기 어느 궁전 실내같은 우아하고 고즈넉한 전시관에 넉넉한 공간을 두고 걸려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어서 오라고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R 나는 반짝거리는 마루 바닥을 딛고 왕비와 공주처럼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모든 전시실 바닥은 반짝거리는 마루였고 방 마다 벽난로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점잖은 가정의 거실에서 고상한 실내를 구경하는 분위기였다. 인상파 그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바로크, 르네상스 등 고전미술들도 상당히 많았다. 마네의 그림‘폴리 베르제르’가 나타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R의 팔을 꽉 잡았다. 천사 라파엘이 토바이아스를 보호하며 여행하는 보티첼리의 그림과 루벤스의 그림‘얀 브뤼겔의 가족’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얀 브뤼겔의 가족’그림 앞에는 한국에서 온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딸을 데리고 배낭여행을 하는 듯했다. 한국말을 하고 있어서 알아 들었다. 부부는 아이들을 루벤스의 그림 앞에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듯했다. 귀한 여행을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 앞에서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쫑긋이 귀를 기울였다. 또 그 모습을 아빠가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예쁜 한국인 가족의 정경을 미소를 띠고 바라 보았다.  

 

갤러리는 각 층마다 이동할 때 나선형의 푸른 계단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거의 530여 점에 이르는 그림들을 거의 다 보았다. 이곳에는 26,000 점에 이르는 드로잉도 소장되어 있다고 하니 정말 방대한 양이다. 하지만 미술관 전체의 분위기는 참으로 친밀하고 우아했다. 하루 종일, 아니 몇 날 며칠이라도 그 속에 살고 싶을 정도였다. 

 

미술관을 거의 다 돌았을 때 우리는 극도로 피곤해졌다. 점심을 거르고 강행군을 했던 탓에 배가 고팠고 무엇보다도 다리가 너무 아팠다. 2층에 있는 코톨드 카페에 가서 좀 쉬기로 했다. 카페는 작지만 아주 아늑하고 정겨운 공간이었다. 우리는 아치형의 유리창 앞 코너에 있는 2인용 테이블로 안내 받았다. 밖으로 분수가 있는 광장이 보였고 밑으로는 조그만 정원 속에 테이블들이 또 있었다. 

 

R과 나는 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인 스콘, 그리고 얼 그레이와 민트 차를 시켰다. 약식이지만 전형적인 영국식 Afternoon Tea 메뉴이다. 차는 놀라울 정도로 강렬하면서 향기로웠고 하얀 클로티드 크림은 부드럽고 신선했다.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잼과 크림을 바른 스콘을 먹으니 피곤이 날아가면서 다시 기운이 났다. 영국인들이 왜 오후에 차와 간식을 먹는지 정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코톨드 갤러리에서의 오후를 보내며 아름다운 그림들로 깨끗하게 정화된 눈으로 서로를 정답게 바라 보았다. 딸과 함께 영국에 와서 이렇게 차를 마시고 있는 그 시간이 귀하고 소중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소근거리며 작품 감상과 평을 하고, 차를 마시고, 스콘을 먹고, 분수가 솟아 오르는 오후의 소머셋 광장을 내다 보다가, 또 서로를 다시 바라보며 그 다정한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약속했다. 이제부터는 매 순간을 이렇게 예쁘고, 우아하고, 소중하게 살아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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