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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24.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Acacademia)
12/03/18  

5월 15일 새벽. 흰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밖으로 ‘쏴’ 하고 비 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코니에는 갑작스런 비를 피해 비둘기들이 날아들었다. 날개 치는 소리와 ‘구구’ 소리가 섞여 들린다. 이마의 상처가 아파서 잠을 설치다가 새벽 빗소리에 겨우 잠이 들었더니 아침에 늦잠. 9시 45 분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예약이 되어 있다. 일어나자 마자 정신없이 달려갔다.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채.  

 

아카데미아 갤러리는 피렌체에서 우피찌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미술관이다.  이유는 물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구글맵을 보며 두오모를 지나서 조금 더 갔다. 58-60 비아 리카솔리(Via Ricasoli). 직사각형의 건물이 나왔고, 건물 옆으로 난 입구에 사람들이 입장권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우피찌 미술관에서처럼 거기 서 있는 가이드 한 명에게 물어 보았다. 통합 예매권을 가지고 온 사람은 51번 문으로 가서 입장권을 받으라고 한다. 얼른 달려가 입장권을 받아서 이번에도 줄 서지 않고 입장했다.

 

그다지 큰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였다. 들어가자마자 회랑이 나오고 그 회랑의 끝 둥근 홀에 하얀 대리석 다비드 상이 보였다. 다비드 상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회랑에는 미켈란젤로가 깎다가 미완성으로 남긴 대리석 조각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의외로 완성된 작품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대리석 밑에 숨어 있는 조각들을 미켈란젤로가 꺼내려는 과정을 보여 주는 듯 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몸짓과 표정을 지니고 돌 속으로부터 떠 오르는 그 조각들은 거의 영성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미켈란젤로의 예술혼이 회랑을 떠 도는 느낌이었다. 

 

R과 나는 천천히 회랑을 지나 다비드 상 앞으로 다가갔다. 천장으로부터 자연광이 들어 오도록 해서 다비드 상은 햇빛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비드 상은 1501년부터 1504 년까지 3년에 걸쳐 제작되었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이 잠시 밀려 나고 피렌체 공화국이 세워졌을 때 피렌체의 시민 정신을 상징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해서 만든 5.17 미터 높이의 대리석 조각상이다. 1504년 9월 8일에 시뇨리아 광장에 세워졌다. 그러나 코지모 메디치 1세가 복귀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피렌체를 떠나게 되었고 (미켈란젤로는 30년 동안 영영 피렌체에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했다. 제자 바사리가 스승의 시신을 모시고 와서 코지모 1세에게 허락 받아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장했다고 전해진다), 다비드 상은 여기저기 부서진 채 광장에 방치 되었다. 그때 일부 사람들이 다비드 상 왼팔의 부서진 조각들을 조심스레 주워 모아 조각 공방에 보관했다고 한다. 그후 코지모 1세는 르네상스 군주답게 “예술은 예술이다”라고 선언하고, 밉지만 예술품이 손상된 채 서 있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복원을 명령해 보관했던 조각들을 갖다가 원래 상태대로 붙였다고 한다.

 

  피렌체시 남쪽으로 가면 미켈란젤로 광장이 있는데 그 곳에 다비드 상의 청동 복사본이 있다. 지금 다비드 상 원본은 시뇨리아 광장으로부터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1873년에 옮겨 왔고 그 자리에는 또 하나의 복사본이 대신 서 있다.

 

다비드 상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서 있으므로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자세이다. 관객은 밑에서 위로 올려다 보아야 하기 때문에 비율을 맞추기 위해 머리는 정상보다 약간 크게 제작되었다. 자세히 보니 부서졌던 왼팔을 비롯해 여기저기 금간 곳이 보인다. 하지만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500년 넘게 관리되고 보존 되어 온 다비드는 눈부시게 희고 깨끗했다. 금방이라도 걸어 내려 와 돌팔매를 던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에 감돌았고, 멀리 적을 쏘아 보는 두 눈은 투지에 불타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이 당당한 대리석 상은 실제로 보니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르네상스 조각의 완벽한 대명사로 불릴 자격이 차고도 넘쳤다.

 

이마에 하얀 반창고를 붙인 나는 정신없이 다비드 상을 바라 보았다. 앞에서 보고 뒤로 돌아가서 뒷모습을 보고 다시 한 바퀴를 돌면서 또 보고 그렇게 한참을 맴돌았다. 혼신을 다해 제작한 역작 다비드 상을 두고 정쟁에 밀려 초라하게 피렌체를 떠나야 했던 거장 미켈란젤로에게 마음 속으로 말했다. ‘다비드 상은 건재합니다. 21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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