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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28. 산타 크로체 성당 2
01/02/19  

산타 크로체 성당은 대대로 피렌체의 권력가와 부호들의 후원 속에 관리되고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쟁쟁한 가문들이 성당의 보수와 장식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으며, 때론 경쟁이라도 하듯 당대 최고 화가들을 고용해 성당 벽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헌정했다. 과연 산타 크로체 성당의 내부에 비어 있는 벽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공간이 있는 곳에는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R과 나는 죠토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진 채플부터 찾아 보았다. 죠토는 중세 비잔틴 스타일의 경직되고 평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을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화가로 기록된다. 우리가 아는 개념의 서양화를 그린 시초는 죠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타 크로체에서 죠토의 프레스코화는 중앙 제단 옆에 위치한 카펠라 페루찌(Cappella Peruzzi)와 카펠라 바르디(Cappella Bardi) 등 두 곳의 채플 벽에 그려져 있었다.  페루찌 채플에는 성 요한의 생애가 그려져 있고, 바르디 채플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가 그려져 있다. 채플 벽을 분할해 성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은 장면들을 묘사했다. R과 나는 높디 높은 벽을 올려다 보았다. 5백 년이 넘는 동안 프레스코 벽화는 색이 바랬고, 군데 군데 지워졌으며, 간혹 손상된 부분이 그대로 방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죠토 그림의 본질은 하나도 변치 않았다. 특별하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기적처럼 겪었던 믿음의 사건들이 그려져 있는데, 과장도 왜곡도 없이 잔잔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진솔하고 소박하다. 위대한 성인의 생애를 무심히 보여주고 그 속에 겸손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그림. 가만히 들여다 보는 중에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엄마하고 파두아(Padua)에도 가 보자! 거기 아레나 채플에 죠토가 그린 일생 일대의 역작 ‘예수의 생애’ 하고 ‘성모의 생애’ 를 봐야 해!” 나는 옆에 있는 R의 팔을 꽉 잡으며 속삭였다. “엄마, 그 전에 우선 여기 산타 크로체 성당을 마저 둘러 봐야겠지?” 쉽사리 흥분하지 않는 냉철한 R은 엄마의 손을 잡고 성당 중앙으로 나왔다. 벽을 따라 늘어선 묘와 묘비들의 끝이 안 보였다. 오른쪽 끝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산타 크로체에 실제로 안장되어 있는 위인 중에 우리가 알아 본 인물들은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천국의 문’을 제작한 로렌조 기베르티,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 작곡가 지오키노 로시니, 거장 미켈란젤로 등이 있고, 다른 곳에 안장되어 있으나 여기에 묘비가 있는 인물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등이 있었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 위인들이 셀 수 없이 모셔져 있는데 계속 돌면서 나중에 보니 우리가 걸어 다니고 있는 바닥에도 온통 묘판들이 새겨져 있었다. 피해서 걸어 보려고 했으나 밟지 않고는 진행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온 성당 전체가 ‘무덤’이었다.

 

산타 크로체에는 자체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관람 중 인상 깊었던 것은 1966년에 아르노 강이 범람해서 피렌체에 대 홍수가 일어 났을 때의 기록물. 산타 크로체에도 물이 밀려 들어 와 건물과 미술품들이 대거 파손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성당에서 떠내려간 십자가를 끌어 올리는 흑백 사진이 있었는데, 진흙에 뒤덮인 커다란 십자가를 필사적으로 끌어 당기고 있는 피렌체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수 백 년을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 홍수에 떠 내려가게 생겼으니 정말 기가 막혔을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성 프란치스코가 입었다는 의복. 성 유물이어서 유리 상자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누더기였다. 실제로 그 옷이 성 프란치스코의 유품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누더기 옷이 상징하는 검약과 청빈의 이미지는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우리는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본당 밖으로 나왔다. 정원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 아래 짙푸른 사이프러스 나무가 높이 서 있고, 정원 한 쪽에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산화한 용사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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