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여행
홈으로 그림여행
핑키 (Pinkie c. 1794)
01/07/19  

토마스 로렌스 (Thomas Lawrence 1769 – 1830)

(캔버스에 유채 146 cm x 100 cm 샌 마리노 헌팅턴 라이브러리)

 

한국에서 친지가 방문하거나 갓 이민 온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은 꼭 모시고 가는 곳이 있다. 로스엔젤레스 근교 샌 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Huntington Library). 미국 철도 갑부이자 미술 수집가였던 헨리 헌팅턴이 자신의 대저택을 미술관과 대 정원으로 꾸며 일반에게 공개한 관광 명소이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 명화들이 대거 소장되어 있고 방대한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미술관의 대표적인 작품이 영국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블루 보이’인데 그 그림과 짝을 이루는 것이 역시 영국 화가 토마스 로렌스가 그린 ‘핑키’ 이다. 투명한 청색의 ‘블루 보이’와 함께 연하고 하늘거리는 분홍색의 ‘핑키’는 마치 한 명의 화가가 그린 듯 스타일과 구도에서 완벽하게 어울린다. 그러나 두 그림은 두 명의 다른 화가가 그렸고, 제작 연도에서도 약 25년의 차이가 난다.

 

‘핑키’의 주인공 새라 물턴(Sarah Moulton)은 18세기 말에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에 정착한 영국인 찰스 물턴의 외동딸이었다. 자메이카에서 땅과 노예를 소유하고 사탕수수와 럼주를 수출하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새라는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핑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9살 되던 해에 영국식 교육을 받으러 영국 그린위치로 보내지는데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다 12살에 죽고 만다. 독감 같은 순환기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새라가 죽기 1 년 전, 새라를 그리워하던 할머니가 영국의 유명 화가에게 새라의 초상화를 의뢰해 토마스 로렌스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1 년 후에 새라는 죽었지만 그녀의 초상화는 영원히 남게 되었다. 1910년까지 가족이 소장했던 이 그림은 1927년에 헨리 헌팅턴이 구입하여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영구 소장하게 되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걸려 있는 핑키의 초상화는 황금빛과 청색이 섞여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작은 소녀를 보여 준다. 그녀의 드레스와 리본이 달린 모자는 바람에 휘날리고, 검은 눈동자는 핑크색으로 물든 뺨 위에서 반짝거린다. 어른이 되어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소녀의 순수함은 상실의 위험 없이 그림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아름다우면서 가슴에 에이는 듯 애처롭기도 하다.

 

꿈처럼 지나가는 청춘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박제된 듯한 ‘핑키’는 그 짝궁 ‘블루 보이’ 와 함께 헌팅턴 라이브러리 방문을 값진 미적 경험으로 승화시켜 준다.

 

김동백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