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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행복
01/07/19  

어떤 집에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옥답을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막내 아들에게는 돌투성이의 척박한 밭 한뙈기를 주었습니다. 막내는 신세대이고 정의파여서 아버지에게 자주 대들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막내는 심성이 따뜻하고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형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평소에는 불평불만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리고 막내가 척박한 땅을 유산으로 받은 걸 고소해 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동생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형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마을에 대단위 주택단지가 들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야나 밭을 가진 사람들은 수십 배의 값으로 땅을 팔아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농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막내는 가난으로 천대받다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쓸모 없던 땅이 보물처럼 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오만하게 자신에게만 행복이 언제나 졸졸 따라다니리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착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 돈 있고 빽 있던 사람들 즉,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 율법학자들은 참 행복이란 율법을 잘 배우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하고 있기에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성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613개의 율법 조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복잡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자세히 숙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당시의 민중들은 매일 노동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율법을 다 배워 그대로 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세금도 조금밖에 낼 수 없고, 헌금도 조금밖에 낼 수 없기에 항상 미안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슬퍼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죄인이기에 감히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설령 받는다면 아주 조금 받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높으신 분들이 다 복을 받으시고 나면, 찌꺼기 정도를 받는 것으로도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누가 민중에게 이러한 생각을 불어 넣었는가? 물론 그것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혹은 파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리 속은,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하였고, 조금도 틀림이 없다고, 하느님께서는 자신들의 의견에 100% 동의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의견은 전혀 달랐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민중들은 마음이 언제나 가난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고개 숙인 사람들, 언제나 율법을 못 외우고, 못 지켜서 죄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민중의 그러한 생각을,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그러한 생각을 뒤바꾸고 싶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민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이 스스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대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니, 그 이유는 하느님 나라가 그대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슬퍼하고 있는데, 그대들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완전히 뒤바뀐 행복의 개념을 말씀하십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참 행복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부자, 식자, 시간이 많아서 성당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만을 열심한 신자,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람, 행복을 잡은 사람으로 여기고, 가난한 사람, 무식한 사람, 그래서 거친 일을 하느라고 시간이 없고, 그래서 성당도 잘 못나오는 사람을 죄인으로, 복 받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외쳐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아니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다‥‥‥”

 

최기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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