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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1. 하얀 멧돼지 선술집 (Osteria Del Cinghiale Bianco) 1
01/22/19  

 이제 정말 저녁을 먹으러 가야한다. 이리저리 돌아 다니느라 배가 고팠다. 우리가 향한 곳은 ‘오스테리아 델 칭기알레 비앙코’. 숙소 근처에 있어서 보아 두었다. 자그만 규모이지만 지나가면서 보니 손님들이 많았고, 검색해보니 피렌체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맛집이었다. ‘오스테리아’는 이탈리아 정통 선술집을 말한다. 옛날에는 주로 와인을 팔면서 안주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서민적인 식당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레스토랑 형식을 갖춘다. 굳이 ‘오스테리아’ 라고 부르는 것은 편안하고 캐쥬얼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그러는 것 같다. ‘칭기알레 비앙코’는 ‘하얀 멧돼지’라는 뜻인데 그 이름을 들으면 어쩐지 사냥꾼들이 하루 일을 끝내고 선술집에 모여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정경이 떠 올랐다.

 

하얀 멧돼지 선술집’의 주소는 Borgo San Jacopo 43r, 50125. 우리 숙소와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우리는 피렌체에 머무르는 동안 한 번도 식사를 하기 위해 예약을 한 적이 없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기분 내키는대로, 그때그때 발길이 닿는대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고, 하도 레스토랑이 여기저기 많으니까 ‘우리 밥 먹을 곳 쯤이야 없으랴’ 하는 배짱도 생겼다. 무엇보다 미술관과 성당 등을 스케줄에 맞춰 강행군하며 둘러 보다 보니 식사까지 예약 시간에 맞춰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도착했다. 중세 벽돌 건물이 양쪽으로 꽉 들어찬 어둑하고 작은 골목이다. 네모난 대문에 역시 네모난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하얀 글자로 ‘오스테리아 델 칭기알레 비앙코’라고 써 있다. 안에는 손님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덕하게 생긴 중년 이탈리아 웨이터가 ‘부오나 세라!’ 하면서 맞아 주었다. “예약없이 왔는데요.  두 명이요. 저녁 식사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식당 안을 쓰윽 둘러 보더니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마담, 죄송합니다만 현재 만석입니다.” 별로  실망감은 들지 않고 그저 빨리 딴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웨이터가 불쑥 말한다. “하지만!” R과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는 얼굴 한 가득 웃음을 지으면서 두 팔을 크게 벌렸다. “두 분을 위해 특별히 자리를 하나 마련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숙녀분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테이블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이탈리아 스타일 립 서비스이다.

 

우리는 금새 벽쪽으로 난 2인용 테이블로 안내 받았다. 고맙다고 하자 웨이터는 눈을 찡긋 하면서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어둑한 실내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이층도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 위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는 아치형 공간이 있는데 박제된 하얀 멧돼지 세 마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싱글벙글하는 웨이터 한 명이 또 나타났다. 영어는 유창하지 않지만 만면에 웃음을 띄고 가끔 윙크까지 하면서 친절하게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키안티 와인을 반 캬라프 시키고 (엄청나게 맛있는 와인이었다), 카프레제 샐러드, 감자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 (트라토리아 아니타에서 먹은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또 주문했다), 그리고 트러플(Truffle) 파스타를 주문했다.

 

우리 옆에는 미국에서 신혼여행 온 것 같은 젊은 커플이 비스테카 알라 플로렌티나를 먹고 있었다. 체격이 크고 금발에 파란 눈의 커플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형 스테이크를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먹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피렌체 송별 기념으로 먹기로 했으므로 옆눈으로 보기만 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카프레제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나니 트러플 파스타가 나왔다. 프와그라, 캐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송로버섯 트러플. 송로버섯은 재배할 수가 없고, 자연적으로 나는 것도 일 년 중 정해진 기간에만 채취할 수 있어서 ‘땅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산이 유명해서 R이 피렌체에 왔으니 꼭 오리지널 트러플 맛을 보아야 한다며 주문한 것이다. 알 단테로 삶아 버터로만 간을 맞춘  담백한 파스타 위에 트러플을 얇게 깎아 수북하게 얹었다. 한 번 맛을 보니 강렬한 향이 코를 찔러서 움찔했다. 가만히 씹어 보니 아작하게 살강거린다. 알싸하고, 맵고, 곰팡이 같기도 하고, 비 온 후 숲 향기 같기도 하고, 흙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데 무언가 매우 귀한 보물같은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 R은 몇 입 먹어 보다가 맛과 향이 너무 강해서 못 먹겠다며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 버리고 치킨 접시를 끌어 당겼다. 평소 나는 약초나  야채의 쓴 맛을 좋아하는 이상한 미각을 가져서 그 매캐한 풍미의 트뤼플이 몹시 맛있게 느껴졌다. 한 접시를 싹싹 비우면서 ‘이 트뤼플은 호불호가 극명한 먹을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홍어 삭힌 것을 좋아하는 입맛이 이와 비슷한 경우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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