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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2. 하얀 멧돼지 선술집 (Osteria Cinghiale Bianco) 2
01/28/19  

옆 자리의 신혼부부는 계속 와인을 마시며 스테이크를 먹었다. 곁들여 먹던 루꼴라 샐러드도 하나 더 주문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면서 가끔 쉬기도 했다.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큰일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 큰 스테이크를 깨끗이 다 먹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생각 외로 관광객들이 많았다. 관광객들이 숙소나 호텔에서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맛집을 가르쳐 달라’고 물어보면 이 집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트러플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고, R은 로스트 치킨을 잘 먹었다. 식사 도중에 마신 키안티 와인은 정말 훌륭했다. 와인이 식욕을 돋군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신선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식으로 요리해서인지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먹은 것을 죽 나열하면 정말 많이 먹었다 싶은데 사실 각 요리마다 양이 적은 편이라 과식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먹거리를 조금씩 골고루 먹으니 영양적으로도 좋겠지.

 

디저트로는 에스프레소와 Misti Dolci Della Casa를 주문했다. 알몬드 케이크, 티라미수, 비뇰리네 (슈크림), 그리고 마스카폰 크림이 한꺼번에 나오는 종합 디저트 세트였다. 먹는 것을 사랑해서 후식 먹을 위장이 따로 있는 우리는 예쁘고 조그만 사이즈로 여러 가지 나온 디저트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내친김에 포트 와인까지 시켜 마시면서 우리는 내일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의논했다. 내가 꼭 가보고 싶은 산 마르코 성당을 둘러 보고, 시간이 되면  피티 궁과 R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보볼리 정원까지 둘러 보자고 했다. 그 외에도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피렌체 여행에 일주일은 너무 짧다. 영국 영화 ‘전망 좋은 방(Room with a View)’의 주인공처럼 아예 짐을 풀어 놓고 푹 눌러 앉아 두어 달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맛있는 저녁을 실컷 먹은 우리는 헤매고 다닐 것 없이 내일 여기에 다시 와서 대망의 비스테카 알라 플로렌티나를 먹기로 하고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예약하는 것은 또 잊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으나 숙소가 가까우므로 마음이 느긋했다. 숙소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다시 골목을 나가 폰테 베키오를 건너 수퍼마켓에 들렀다. 피렌체에 왔으니 이탈리아 수퍼마켓을 둘러 봐야하지 않겠는가. 수퍼마켓 안은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했다. 역시 파스타와 파스타 소스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탈리아산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각국에서 온 수입품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런데 수퍼마켓 안의 구조는 아주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이리저리 간 곳을 빙빙 또 돌아가야 하는데다 통로도 비좁고 식품들이 두서 없이 진열되어 있어서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진열된 식품들은 하나같이 품질이 좋아 보이고, 예쁘고,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물론 이탈리아 수퍼마켓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게 이탈리아 라이프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알차고 실속 있는 스타일. 하드웨어는 좀 오래 되고 뒤쳐지지만 소프트웨어는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고 예술적인 스타일. 그 세련됨과 미적 감각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나는 생수를 사고, R은 할아버지를 위해 이탈리아 사탕을 여러 봉지 샀다.

 

숙소에 돌아 오니 무척 피곤했다. R이 샤워하는 동안 겨우 양치만 한 나는 너무 졸려서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결에 R이 나를 자게 내버려 두고 담요를 가만히 덮어준 다음 살며시 불을 끄는 것이 느껴졌다. 씻으라고 못 살게 굴며 깨우지 않는 딸의 배려가 고마웠다.

 

정신없이 자는데 새벽에 천둥 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진다. 발코니 난간으로 비둘기들이 비를 피해 날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둠 속에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깊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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