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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덮개를 수놓기 (Bordando el Manto Terrestre c. 1961)
01/28/19  

레메디오스 바로 (Remedios Varo 1908 – 1963)

(메소나이트에 유채 100 cm x 123 cm 멕시코 시티 현대 미술관)

 

레메디오스 바로는 멕시코 초현실파 화가이다. 스페인에서 출생했고,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초현실파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1941년에 스페인 내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멕시코로 갔다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바로는 어렸을 때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 전역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적인 소양을 키웠다. 8세에 마드리드의 수도원 기숙학교에 들어가 엄격한 규율 속에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한 사춘기를 보냈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겪은 두려움과 어린 시절 고통의 기억이 결합되어 그녀의 그림에는 공간에 밀폐된 인물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두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수도원 기숙학교 시절부터 바로는 상상력을 동원했고 이후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환상과 상상이 가능한 초현실주의 미술을 선택하게 된다.  그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 10년 동안 그린 그림에는 연금술과 점성술의 영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바로는 두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초월적인 세계에 가 닿고자 했으며 그 노력은 연금술에 비유할 만한 그녀의 예술 속에 반영되어 있다.

 

여기 이 그림 속에는 까마득한 공중에 솟아 있는 첨탑의 밀실이 묘사되어 있다. 밀폐되어 있으나 관객에게는 내부의 광경이 공개된다. 턱이 뾰족하고, 금발머리를 휘날리는 소녀들이 앉아 자수를 놓는다. 그녀들은 마치 탑에 갇힌 죄수들처럼 보이는데 수도사 복장을 한 감시인이 회초리를 들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녀들을 감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이 수놓는 천은 밀실의 옆으로 길게 난 구멍을 통해 첨탑 밑 텅빈 허공으로 덮개처럼 쏟아진다. 그  위에는 산과 바다, 들판과 강물, 집과 나무, 범선, 파도와 온갖 생물들이 수놓아져 있다. 세상은 그 속에서 생겨난다. 덮개는 바로 세상이다.

 

놀라운 상상력을 역시 놀라운 묘사력으로 그려낸 이 그림은 바로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탑에 갇힌 소녀들의 외모는 바로의 실제 외모와 닮아 있으며 여러 명의 소녀는 바로의 내면에 잠재한  또 다른 자신들일 것이다. 공허한 공간에 순수한 상상의 힘으로 온 세계를 창조하는 이 그림은 억압에 굴하지 않고 정신적 탈출구를 생산하는 인간의 의지를 그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현실을 탈바꿈 시켜가는 연금술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김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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