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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냐 저것이냐?(마태 6,24-34)
01/28/19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는 돈은 차이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업무량이나 종류, 성별이나 기능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같은 액수의 보수를 받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느님이 주신 큰 은혜의 결과이며, 이 재물은 또한 온 인류의 재산이기 때문에 골고루 배분되어야 합니다. 수수의 사람이 세상의 재물을 다 소유하는 것은 정의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재물은 사람들이 의지하는 신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며 재물에게 온갖 희망과 영생까지 기대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섬기다”라는 말은 “누구누구의 종이 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종이란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물건에 다름이 없습니다. 종이란 살아있는 도구에 불과하며, 그 종을 부리고 파는 것은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종이란 자기 시간이 없습니다. 시시각각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할 적에 이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재물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 속하며, 인간이 재물보다 더 중요하며, 재물이 최상의 선(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말씀은 만일 인간이 하느님께 의지하면 세상의 것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다하면 틀림없이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 영생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얻기보다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재물을 구할 것인가? 아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을 것이냐?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재물보다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라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경고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목수 일을 하심으로써 노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물질의 좋은 용도를 부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양로원과 고아원을 짓고, 병든 자를 위한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을 만드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으시며 오히려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물질의 향락이나 낭비는 경고하십니다. 언제나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들의 마음과 손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망설일 것도, 무서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며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이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우리의 근심 걱정은 모두 하느님께 의지하므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값진 노력으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우리에게 노동의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힘써 노력하여 재물을 얻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재물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실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용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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