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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3. 산 마르코 성당 수도원
02/04/19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그대로 쓰러져 잠든 후, 새벽 빗속에 곤히 자다가 8:45분에 눈을 떴다. R은 아직 자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 예약이 없기 때문에 기분이 느긋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기 전에 산 마르코 성당을 보아야 한다. 천천히 샤워를 하고 그새 일어난 R과 준비를 한 다음 함께 사과를 하나 깎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거리는 여전히 관광객의 물결로 가득 찼다. 베키오 다리를 또 한 번 건넌다. 시시각각으로 모습이 변하는 아르노 강과 다리들을 바라본다. 한가로운 오전  아르노 강은 물결 하나 없이 거울처럼 투명했다. 다리 옆에 사랑을 기원하며 자물쇠를 주렁주렁 채워 놓은 연인들의 울타리를 보며 다리를 건너 피렌체 중심으로 들어갔다.

 

산 마르코 성당은 피렌체 초대 군주 코지모 일 베키오 디 메디치가 제일 신임하던 건축가 미켈로쪼에게 위임하여 12세기부터 존재하던 옛 바욤브로사 수도원 자리에 새로 건축해 올린 르네상스 성당이다. 성당은 1437년에 짓기 시작해 1443년에 완공했다. 당시 교황 유게네 4세가 참석하여 축성식을 성대히 올림으로써 메디치 궁, 산 로렌조 바질리카와 함께 피렌체 북쪽 ‘메디치 구역’을 이루는 주요 건축물의 하나가 되었다. 코지모 일 베키오는 이 곳에 수도원을 건축해 도미니코 파 수도사들을 살게 했고, 막대한 재정을 후원해 예술과 학문의 전당을 일구도록 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은 전설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프라 안젤리코는 수도원에 살면서 프레스코 화 ‘수태고지’와 수도사들의 방 벽화들을 그렸다. 내가 산 마르코에 꼭 가 보아야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코지모 일 베키오의 아낌없는 후원 하에 르네상스 예술이 꽃 피었던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피렌체의 예술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려던 괴승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수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피렌체 대 수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는 두오모를 지나 또 중세 골목을 구비구비 걸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우아한 르네상스 성당은 산 로렌조 바질리카나 산타 크로체처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버스와 자동차, 사람들로 가득 찬 작은 광장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듯 했다.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는 성당 건물을 보면서 드디어 프라 안젤리코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여기서는 예약이 없었으므로 입장권을 사야 한다. 일 인당 4 유로만 받는다. 평생 그려 온 내 마음의 보물같은 그림을 보러 들어 가는데 그 입장료가 너무 싼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이 들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맞잡고 입구로 들어 갔다.

 

어둑한 입구를 지나니 조용한 사각 정원이 펼쳐졌다. 중세 수도원의 특징은 언제나 미음 자 건물 한 가운데 정원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는 실내 정원도 보았다.) 정원을 둘러싸며 회랑이 이어진다. 르네상스가 꽃 피어 오르던 그 옛날, 프라 안젤리코와 동료 수도사들이 정원을 바라보며 이 회랑을 지나다니는 상상을 해 보았다. 바로 그 자리에 내가 딸과 함께 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시간과 공간이 아스라히 겹치는 것 같아 잠깐 어지러워진다. 

 

정신을 차리고 1층 오른쪽에 있는 전시관에 먼저 들어 갔다. 치마부에 등 이탈리아 고딕 화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프라 안젤리코의 초기 그림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무엇 보다도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먼저 보고 싶었다. 전시관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층 회랑에 있다고 한다. 나는 R을 끌고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종종걸음으로 이층 회랑으로 올라갔다.

 

이층 회랑. 계단을 죽 올라 간다.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계단이 몇 개 더 있고 그 계단 맨 위에 육중한 나무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다. 그 나무 문 너머 바로 거기에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 벽화 ‘수태고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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