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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4.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02/11/19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을 보기 위해선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올라가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아야 했다. 성스러운 그림이므로 몸가짐부터 경건하게 다가오라는 뜻이 깃든 것 같았다. R과 나는 계단을 다 올라와 따뜻하고 환한 조명 밑에 우리 앞에 펼쳐진  프레스코 벽화를 올려다 보았다.

 

프라 안젤리코는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 도미니코회 수도사이며 화가였다. ‘귀도 디 피에로’라는 본명이 있었지만 ‘천사같은 형제’ 라는 뜻의 ‘프라 안젤리코’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이 너무나 성스럽고 아름다워 ‘천사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수도사’ 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그가 이 산 마르코 성당 수도원 벽에 그린 ‘수태고지’는 부자나 권력자가 지원하여 그린 상품이 아니고 순수하게 자신과 자신의 수도사 형제들이 매일 올려다 보며 기도하기 위해 그린 신앙의 고백같은 그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캔버스에 그려 비싼 액자에 넣지 않고 수도사들이 매일 걸어 올라오는 이 계단 위의 벽에 프레스코 벽화로 소박하게 그렸을 것이다.

 

정면으로 올려다 본 그림은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갈한 정원에 앉아 있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대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무릎을 꿇고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한다. 정원의 모든 꽃과 풀, 심지어 빛과 공기마저 그 놀라운 소식에 숨을 죽인 듯한 고요한 순간이다. 그 영적인 평화로움과 예술적인 완벽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평생 사진으로 보며 동경했는데 눈앞에 나타난 실제 그림은 백 배 천 배 더 아름다웠고 진실로 ‘천사’가 그린 것처럼 영성에 가득 차 있었다. 말문이 막혀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더니 급기야 흐느낌으로 변해 버렸다. ‘수태고지’ 앞에 서서 입을 막고 흑흑 우는 엄마가 좀 황당하고 곤란했을 수도 있었겠건만 R은 가만히 내 곁에 있어 주었다.

 

R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과 함께 자라났다. R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그림은 작은 금빛 액자 안에서 아기를 기다렸고, R이 태어나서 자라는 것을 늘 지켜보았다. 엄마의 감격을 이해하는 R은 조용히 옆에 서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내가 마음껏 그림 앞에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 두고 자기 혼자 다른 그림을 보러 갔다. ‘엄마, 창피하니까 그만 해!’ 하고 옆구리라도 찔렀다면 무척 슬펐을 것이다. 이해심이 많고, 너그럽고, 공감할 줄 아는 R이 참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수태고지’ 벽화 옆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상아로 조각해 놓은 작은 모형 부조가 있었다. 점자 책처럼 손으로 만져 보기 위한 조각 그림이다. 그런 조각 그림은 처음 보았다. 나도 눈을 감고 살며시 만져 보았다.

 

감격을 가라 앉히고 수도원 방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또 하나 ‘수태고지’ 그림을 찾아 나섰다. 산 마르코 수도원 기숙사에는 약 40여 개의 방이 있는데 수도사들이 그 방에 머무르며 기도에 힘썼다고 한다. 각 방마다 아치형 천장에 작은 창문 하나가 있고 벽에는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하나씩 있다. 예수의 탄생부터 예수의 부활까지 전 생애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 하나 하나가 다 뛰어난 작품들이다. 수도사들은 각자의 방에서 그림을 보며 묵상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동쪽 복도에 있는 1 번 방이 프라 안젤리코의 방이었다고 한다. 그 방에는 부활하신 예수를 마리아가 만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초록의 정원에 맨발의 예수가 서 있고 막달라 마리아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묻는 듯 무릎을 꿇고 예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제목은 ‘놀리 메 탕게레 (나를 만지지 말라)’이다. (푸른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그 그림 속 정원이 산 마르코 수도원 정원과 똑같이 생긴 것을 나중에 확인했다.)

 

그 40여 개 방 중에는 산 마르코 성당과 수도원을 지어 헌납한 코지모 일 베키오의 방도 있었다. 38번과 39번 방. 그도 정기적으로 수도원에 들어와 그 방에 머물며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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