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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선데이로스트
04/23/18  |  조회:184  

선데이로스트

 

학스무어(Hawsmoor) 세븐다이얼스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었다전통 영국식 스테이크 하우스와 칵테일 바라고 해서 고풍스런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예상이 어긋났다아주 현대적으로 꾸며놓은 레스토랑이었다그러나 검은 오크로 장중하게 만든 정문은영국 전통 느낌이 물씬 났다.

 

우리는 예약 없이도 일찍 도착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웬걸저녁 내내 예약이   있는 상태였다.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더니 안내 직원이 그럼 칵테일 바에서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거기도 정식으로 테이블이  있고 단지 칵테일 바이므로 조금 어수선할 뿐이라고한다우리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레스토랑은 계단을 따라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는데 내려가니 화려한 칵테일바가 나오고 저쪽으로 넓고 환한 다이닝 홀이 보였다구조를 보니 차라리 칵테일바에 앉아식사하는 쪽이 훨씬 나아 보였다이쪽 저쪽 환히  보이고분위기가  활기찼기 때문이다식사를  하게 될까  약간 걱정했던 우리는 당장 기분이 좋아져서  레드 와인과  칵테일을한   시켰다.   R 스물  살이   되었는데 영국은 18세부터 술을 마실  있다.  웨이트레스는 나이를 물어 보지도 않았다.

 

장밋빛 뺨을  전형적인 잉글리쉬 로즈(English Rose) 영국 아가씨 웨이트레스가 왔다.  너무예뻐서 자세히 보았는데 엉뚱하게 코에 코걸이를 하고 있었다우리는 메뉴도 보지 않고 선데이 로스트 2인분을 주문했다.  웨이트레스도 선데이로스트를 주문할  알았다면서 웃으면서메뉴를 가지고 갔다.

 

선데이로스트는 영국 전통으로 고기를 구워 가족들이 둘러 앉아 먹는 일요일 오후 식사를 말한다.  원래는 아침에  가족이 교회에 가면서 주부가  고기 덩어리를 오븐에 넣어 놓고 간다.  교회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고기가 맛있게 익어서  가족이 따뜻하게 식사를 했다고 한다.고기는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양고기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으로.  고기에 곁들여 제철야채와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해 고기에서 떨어진 기름으로 구운 요크셔푸딩  (Yorkshire Puddin) 먹는다요즘은 사람들이 바쁘고 여유가 없으므로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요리를 하는 집이 드물다고 한다그래서 학스무어같은 레스토랑이 가정에서 먹는 듯한 선데이로스트를 메뉴에서 제공하고일요일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레스토랑으로 선데이로스트를 먹으러 몰려 온다실제로 우리가 와인과 칵테일을 마시면서 기다리는 동안 예약을  사람들이 물밀 듯이 도착하고 있었다.

 

사람 구경을 하기 좋아하는 나는 칵테일바에 있는 우리 테이블이 너무 맘에 들었다오는 사람가는 사람    있고퇴근 길에 한잔 하러 들린 듯한 젊은이들이 칵테일바에 기대어 듣기 좋은 영국식 영어로 유쾌하게 떠드는 것도  보고다이닝 홀에 앉아 있는 점잖은 영국인가족들도  바라볼  있고 아주 좋았다일요일 오후에 가족끼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세계 어디든 같은 풍경이겠지만영국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학스무어는 야단스럽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은근히 멋이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어딘지 모르게믿을 만하고 품질이 정확할  같은 기분그런 것이 영국의 특징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 선데이로스트가 나왔다!

 

우리 선데이 로스트는 워낙 바빠서인지, 아니면 이 쪽이 칵테일 바 쪽이라서 그런지 지배인인 듯한 젊은신사 손에 들려 나왔다. 지배인은 커다란 접시를 양손에 들고 다가와  ‘마담, 주문하신 선데이 로스트가 나왔습니다’ 라고 정중히 말했다.  우리가 ‘땡큐’ 라고 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는데 지배인은 엉뚱하게 ‘오늘 선데이 로스트가 특별히 잘  구워졌습니다.  너무 맛있게 보여서 제가 좀 먹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라고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래요?’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지배인은 활짝 웃으며 ‘마담,  농담입니다. 맛있게드세요.’ 라면서 접시를 우리 테이블에 놓아 주었다.  R과 나도 유쾌하게 웃었다.  그가 하도 근엄한 얼굴로진지하게 말해서 깜박 넘어갔다.  R이 영국 사람들은 유머 감각이 대단한데 우습다는 느낌보다 위트가 넘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선데이 로스트는 너무 맛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 먹나 할 정도로 큼직한 고기는 완벽하게구워졌고, 곁들여 나온 노릇노릇한 요크셔 푸딩은 완전 오리지널! 야채는 감자와 양배추, 당근, 마늘, 섈럿이 따라 나왔는데 각자 고유의 빛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잘 익혀졌으면서도 신선한 풍미를 고스란히  간직했다. 야채를 그렇게 요리하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어려운데 정말 요리를 잘 했다. 포슬포슬하면서도 겉이 바삭하게 익은 감자가 어찌나 맛있던지. 고기에 곁들일 호스래디쉬 (Horseradish) 와 그레이비도  영국인도 아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제대로 된 맛이었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고 누가 그랬어?’ 라며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야채가 너무 맛있어서 추가로 브뤼셀스프라우트도 시켜 먹고, 와인도 한 잔 더 시켰다. 평소에는  와인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하는 실력인데  맛있는 음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서 와인이 마치 물처럼 술술 흘러 들어갔다. R은 영국에 와서 잘 먹고 지냈지만 오늘 최고로 맛있게 먹는다며 엄마를 기쁘게 했다.

 

식욕이 왕성한 우리는 기분 좋게 접시를 싹싹 비우고 디저트까지 먹었다.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인 블랙토피 푸딩(Black Toffee Pudding with Clotted Cream).  너무 맛있었다!  도대체 왜 영국 음식이 맛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프랑스 음식처럼 미묘하게 세련되거나 이태리 음식처럼 다양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맛을 정직하게 살려낸 듯한 음식이었다. 

 

디저트까지 다 먹고 계산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R이 영국은 손님이 계산서를 달라고 할 때까지 절대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로 테이블을 다 치워 갔는데도 내가 계산서를 달라고 할 때까지 가져오지 않았다.  손님의 시간과 여유를 존중하는 문화이다. 미국에서 간혹 먹고 있는 와중에 계산서를 갖다 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건 참 무례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서는 약 85파운드.  선데이 로스트가 각 20파운드.  달러로는 27불 정도인데 아주  저렴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비싸다 했어도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영국에는 팁이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일어섰다. 손님들은 계속 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처럼 칵테일 바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넓은 실내에 가득 차게 앉아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풍요롭고 편안한 모습.  런던  일요일 저녁 한때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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