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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5. 산 마르코 수도사들의 방
02/18/19  

수도사들의 방이 있는 이 산 마르코 성당 수도원은 내가 일생 살아 오면서 머물렀던 곳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고 말하고 싶다. 무한한 기도가 이루어졌던 공간에 충만한 영적 기운이 모든 것을 정화시키며 영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 같았다. 복도에 비쳐 드는 환한 햇살, ‘베로니카의 베일’처럼 복도 커다란 창에 너울거리며 드리워져 있는 하얀 커튼, 그리고 조용조용 속삭이며 수도사의 방들을 들여다보는 관람객들 등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우아하고 단순한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상당 부분 힘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혼자서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는R을 만났다. “엄마, 다 봤어? 엄마가 찾고 있는 또 하나 수태고지 내가 찾았어!” R은 나를 보더니 신이 나서 말했다. 내 손을 잡아 끌면서 3 번 방으로 데리고 간다. 프라 안젤리코의 1 번 방에서 하나 건너인 그 방에는 정말 또 하나의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소박한 이미지로 인해 유명한데 실제로 검소한 수도사의 방 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니 그 겸손함과 정결함에 마음 속 깊이 감동 받았다. 크고 화려하게 그려져 액자에 들어 있는 그 어떤 수태고지 그림보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어쩌면 가장 그 원래 의미에 근접해 있는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다른 방들도 계속 둘러 보았다. 모두 벽화가 그려져 있고, 모두 작은 창문이 하나씩 있다. 그 조그만 방에서 일생을 바쳐 기도하고 묵상하며 살아갔던 수도사들은 수 백 년 후에 그 기도의 현장과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를 보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란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복도를 다 돌고 건물 남쪽 끝에 이르렀다. 이 곳에 한때 수도원장으로 있었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방이 나왔다. 수도원장의 방이라 그런지 12, 13, 14 번 방을 합쳐 놓았다. 창문 하나와 벽화만 있던 수도사들의 방과 달리 창문도 여러 개이고 책상도 있고, 따로 기도실도 있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가 부패와 향락에 찌들었다며 사치품을 다 불태워버리라고 했는데 그 사치품들이란 것이 문학과 예술을 다루는 책과 그림들이었다. 그 괴팍한 수도원장으로 인해 엄청난 예술품이 사라졌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아까워서 가슴 한쪽이 다 쓰라렸다.

 

그런데 사보나롤라의 유품들이 진열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중세시대 수도사들은 ‘주의 뜻’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절제하고 때론 수행 중 정신적 승리를 위해 스스로 육체적 벌을 가하기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사보나롤라도 그랬던 것 같았다. 그가 입었다는 다 낡은 옷이 있었다. 그 천이 스치면 피부가 베일 것처럼 거칠고 따갑게 보였다. 게다가 넓적한 허리띠는 살갗을 파 먹었을 것이 분명한 쇠 수세미 같았다. 뾰족뾰족 쇠 강판처럼 생긴 등에 대는 옷 조각도 보았다. 세상에! 이런 의상을 걸치고 어떻게 살았을까? 하루 종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엄마, 이런 옷을 입고 살았으니 맨날 아프고 기분이 나빠서 다 죽여 버리고 싶었을 거야! 심술이 나서 예쁘고 좋은 것도 다 부시고 태워버리고 싶었겠지?” R은 사보나롤라의 행적에 대해 매우 간단하고 현실적인 심리 해석을 내 놓았다. 사실 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의상을 보니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편안한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 성격도 좋아지는거야! 그래야 세계의 평화가 오지.” R은 다시 한 번 심오하면서도 실용적인 결론을 내리고 엄숙한 표정으로 사보나롤라의 유품들을 내려다 보았다.

 

산 마르코 성당과 수도원은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1시 15분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계단 끝에 있는 수태고지 그림을 찾아 갔다. 그림 앞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평생 보고 싶던 그림을 이렇게 찾아 와 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고, 다시 또 한 번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환하고 아름다운 그림 앞에 서서 기도 드리는 그 잠깐 동안 얼마나 마음이 활짝 열렸는지 불현듯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까지 다 들었다. 프라 안젤리코는 5백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그림의 영성으로 한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종교 예술의 강력한 힘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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