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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봅시다[正見]!
03/04/19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뒤 설하신 첫 대중 법문은 중생으로서 누구나 겪는 고통, 즉 고성제(苦聖諦), 고통의 원인을 말하는 집성제(集聖諦), 고통의 소멸을 설하는 멸성제(滅聖諦),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을 설하는 도성제(道聖諦)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의 4성제(四聖諦)입니다.

 

정견(正見)은 바로 이 4성제의 네 번째인 도성제 즉 8정도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수행의 방법입니다.

“더러운 법 가까이 하지 말고 함부로 굴거나 게으르지 말며 바르지 않은 견해를 익히지 말지니 그것들은 이 세상을 자라게 하노라.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바른 견해 더욱 늘이면 백천 번 태어나더라도 결코 악취(惡趣)에는 떨어지지 않느니라.” 『잡아함경(雜阿含經)』 제 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 즉 우리 범부들이 더러운 법을 가까이 하고, 함부로 굴거나 게으르게 살며, 바르지 않은 견해를 바른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 자체도 알지 못함으로써 바르지 않은 견해를 익히게 되면 그 결과가 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고통의 세상이니 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는 것은 바로 고통을 자라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통에 가득 차서 매우 힘들면서도, 그 고통을 참아 내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 살더라도, 바른 견해 즉 정견을 더욱 늘이면 백천 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결코 나쁜 세상인 악취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른 견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견해로 번뇌(漏)와 집착(取)이 있고 선취(善趣)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견해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한다.” 이 말씀 역시 『잡아함경』제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속의 바른 견해는 무엇일까요?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인가? 보시(布施)도 있고, 주장(說)도 있으며, 재(齋)도 있고, 선행과 악행도 있으며, 선악행에 대한 과보(果報)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있으며, 부모도 있고 중생의 태어남도 있으며, 세상에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된 아라한도 있음을 아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견해라 한다.”역시 잡아함 제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세속적인 바른 견해는 구분하자면 보시, 주장, 재, 선행, 악행이 있다고 한 말씀은 바로 우리가 하는 행위 즉 업(業)의 소유자로서의 올바른 견해라 할 수 있고, 선악행에 대한 과보도 있다고 한 말씀은 업을 모태로 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이의 올바른 견해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세속적인 바른 견해와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세속적인 바른 견해는 비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선취로 향하게 하지만 번뇌와 집착이 있는 바른 견해이고, 성스러운 바른 견해는 번뇌와 집착이 없으며,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잘 듣고 간직한 다음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골똘히 사유하라(獨一靜處專精思惟)”

그렇습니다. 현재의 우리 몸이 세속에 있으므로 처음에는 세속적인 바른 견해라도 얻어서 보시도 행하고, 재도 베풀며, 어른을 공경하며, 선행도 베풀고 아라한 같은 성현이 있음을 굳게 믿고 바르게 살아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스러운 바른 견해인 4성제를 하나하나 뜯어 놓고 바로 이해하는 노력을 하고 그 이해에 따라 생긴 지견(知見)을 가지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하나 자기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서 자기 안에 그릇된 소견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수행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법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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