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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38. 피티 궁전 (Palazzo Piti) 1
03/11/19  

피티 궁전은 피렌체 은행가였던 루카 피티가 1458년에 짓기 시작했다. 루카 피티는 코지모 메디치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는데 메디치 가가 살고 있던 메디치 궁전보다 더 크고 호화로운 성을 짓고 싶어서 당대 최고의 건축가를 고용해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카 피티는1464년에 큰 재정적 시련을 겪게 되고 피티 성을 미완성으로 남겨 둔 채 1472년에 죽고 만다.

 

남겨진 피티 성은 1549년에 코지모 메디치 1세의 부인 엘레노어 디 톨레도가 사들였다. 엘레노어는 베니스 출신으로 막강한 재력가의 딸이었다. 피티 성은 메디치 가의 소유 하에 확장, 완성되어 지금의 웅장한 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메디치 가는 처음에 이 궁전을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들과 예술품을 전시하고 귀한 손님을 모시는 숙소로 사용하다가 베키오 궁전으로부터 옮겨 와 이 곳에서 직접 살기도 했다. 피티 궁전과 베키오 궁전을 우피찌 갤러리를 통해 이어 주는 지상 2층 바사리 복도도 이때 지었다. 메디치 가의 사람들은 그 비밀 복도를 지나 두 궁전 사이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오갔다고 한다. 18세기에는 나폴레옹이 이 곳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기도 했고, 이탈리아가 통일되었을 때는 왕의 주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19년에 빅터 엠마누엘 3세가 피티 궁전 건물 전체와 그 소장품들을 모두 이탈리아 국민에게 기증해 현재의 대형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피티 궁전은 밖에서 보면 화려한 궁전이라기보다 튼튼한 요새같이 생겼다. 르네상스 건축 기법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도리어 옛날 로마시대 건축물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입장권을 사는데 하필이면 오늘 궁전 본관과 보고 싶었던 의상 갤러리는 오픈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픈한 것은 실버 갤러리와 궁전 뒤 정원 보볼리 가든뿐이었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이 있는 팔라티나 갤러리, 메디치 가가 거주하던 14개의 로열 룸 등을 꼭 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피티 궁전은 생각보다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반나절에 다 둘러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하고 우리는 실버 갤러리와 보볼리 가든의 입장권을 사서 궁 안으로 들어 갔다.

 

커다란 기관차도 통과할 것 같은 입구로 들어서니 절제된 디자인으로 장엄하게 지어진 미음자 모양의 코트 야드가 나타났다. 울긋불긋하지 않고 통일된 브라운 색조의 벽돌이 웅장한 성의 위엄을 강조하는 듯했다. 우리는 코트 야드의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곳은 아마 왕족들과 귀족, 그리고 외국에서 온 사절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들어 와 내리는 곳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둘러 싼 성의 규모와 위상에 질려 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피티 궁을 보고 나서 프랑스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 베르사이유 궁을 짓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고 R이 설명했다.

 

시간이 별로 없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실버 갤러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로렌조 일 마니피코가 사용했다는 집무실이 나왔다.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의 방이었다. 메디치 가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패밀리 트리(Family Tree) 그림과 로렌조 일 마니피코의 초상화와 데드 마스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강인하고 근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서려 있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지성과 열정이 담겨 있는 듯했지만, 서글픈 우수에 가득 잠겨 있었다. 두오모에서 일어 났던 정변에서 사랑하는 동생 줄리아노를 비명에 잃은 애통함 때문일까?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그의 초상화를 보며 르네상스 부흥을 이끌었던 대 군주의 평탄치만은 않았던 삶을 잠시 묵상해 보았다.

 

집무실 건너편에는 외국 사절이나 정객을 맞는 접견실 (State Room)이 있었는데 그 규모와 화려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높디 높은 천장과 사방의 벽에 트롱프 뤠이 기법 그림으로 접견실의 거창함과 화려함을 극대화해 나타냈고, 천장의 대 벽화에는 그리스 로마시대 의상을 휘감은 메디치 가의 사람들이 하늘에 떠 올라 천상의 신과 천사들로부터 왕관을 부여 받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가운데는 파랑 공과 빨강 공들이 그려진 메디치 가의 문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의 권력이 저 위의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무조건적인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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