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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워털루광장
04/23/18  |  조회:192  

워털루광장 (Waterloo Place)

 

우리는 다시 줄을 서서 워털루광장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해리가 내 옆에서 설명을 해 준다워털루 광장은 1815년 나폴레옹을 패배시키고 영국이 승리한 워털루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1820년 말에 지어졌다고 한다.  팔 말 가로수 길로부터 리전트파크를 이어주는 길의 마지막 연결점으로 역사적인 건물들과 기념비 및 동상들이 많이 있다.

 

멀리서부터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요크와 알바니의 공작 프레데릭 공의 기념비 동상이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거의 탑이라고 할 만한 구조물인데 높이가 34미터나 된다고 한다프레데릭 공은 영국 군대를 개혁한 역사적인 인물로서 영국 동요에 그의 업적이 등장할 만큼 유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반대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1854 – 1856년의 크리미아전쟁 기념비가 나온다워털루광장을 대표할 만한 기념비인 것 같았다크리미아전쟁에서 죽은 2000명 이상의 군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인데 그 군인들의 동상은 패배한 러시아 군대로부터 수거한 대포를 녹여서 만들었다고 한다그리고 크리미아전쟁 기념비 앞에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동상이 있었다전쟁터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며 밤을 밝혔듯이 조그만 램프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높이 서 있는 그 청동상을 보며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떠 올리니 역사가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듯했다.  해리에게 한국에서도 어렸을 때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배운다.  위인전으로도 많이 읽는다.”라고 말해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팅게일 동상 옆에는 영국 역사 최초로 전쟁터에 여성 간호원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는데 기여한 당시 육군장관 시드니 허버트 경의 동상이 서 있었다결과적으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파견되어 전쟁터에서 병원을 개혁하고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구했으니 그의 동상이 나이팅게일의 동상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이해 되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워털루광장 중앙에 에드워드 7세의 기마상이 나온다원래는 훨씬 웅장한 기념비가 건립될 예정이었는데 에드워드 7세에 이어 등극한 조지 5세가 반대해서 그냥 기마상이 세워졌다고 한다우리는 계속 걸어가며 역사적인 기념비와 동상들을 살펴 보았다.  북극 탐험가 존 프랭클린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하늘을 방어한 뉴질랜드 전투기 조종사 키이스 파크남극 탐험가 팔콘 스코트전쟁영웅 콜린 캠벨 등

 

영국 청년들과 함께 기념비와 동상들을 둘러보는 동안 이 기풍 당당한 영국 거리와 그 곳에 가득한 역사적 기념비와 동상들을 매일 보며 지나다니는 영국인들의 의식 세계는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설명을 하며 걸어가는 해리와 그의 친구들을 보며 이 영국 청년들의 역사 의식도 궁금했다

 

그런데 그 영국 역사를 말해주는 수많은 기념비와 동상들 중에 독일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었는데1934년 무렵의 독일 대사관 자리에 있던 자리에 위치한 조그만 추모 묘였다독일산 셰퍼드였던 지로는 당시 독일 대사의 애견이었으나 어느 날 전기 배선 줄을 잘못 씹어 감전사했다고 한다묘비에는 충실한 동반자’ 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나치 독일 당시의 기념물로서는 런던에서 유일하다고 한다쟁쟁한 영국인들 사이에 있는 독일 개의 추모비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2차세계대전에서 목숨을 걸고 나치에 저항하며 끝까지 싸워 승리한 영국인들의 점잖은 복수일까우리는 워털루광장을 지나 피카딜리가를 향해 계속 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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