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으로 여행
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42.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Bistecca alla Fiorentina) 1
04/08/19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플로렌티나’인 줄 알았는데 스펠링을 자세히 보니 ‘피오렌티나’ 였다).  피렌체와 인근 토스카나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역 별미 비프 스테이크이다. 한국에서는 한우가 유명하듯이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키아니나’ 라는 품종의 소에서 나오는 고기를 최상급으로 친다.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위한 고기는 갈비살에 가까운 부위인데 미국에서는 ‘티본스테이크’ 라고 부르는 부위이다.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무게는 대략 800 그램에서 1.2 킬로그램 정도이고 두께는 손가락 3-4개를 합친 정도. 15일에서 21일 정도 숙성시켜야 하고, 스테이크를 구울 때에 고기는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듯 차가우면 절대 안 되며 반드시 실온 상태에서 구워야 한다고. 고온의 숯불 위 그릴에 얹어 한 쪽에 3-5 분씩 딱 한 번만 뒤집는다. 고기 속은 거의 날 것인 것처럼 레어(rare)로 익혀져 뜨겁지 않고 따뜻한 정도에 그쳐야 하며, 고기 위에는 소금만 가볍게 뿌릴 뿐 후추나 올리브 오일 같은 것은 전혀 추가되지 않는다.

 

우리가 미리 검색해서 알고 온 것은 이 정도였다. 두께와 무게가 보통 스테이크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왔지만 막상 우리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가 나왔을 때 실제의 모습을 보고는 ‘오 마이 갓!’ 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페 서빙 그릇같은 커다란 접시 위에 육중하게 얹혀 나온 스테이크는 주방에서 미리 썰어서 내 주었는데 한 조각만 먹어도 배 부를 것 같았건만 큼직한 티본에 달린 고기는 열 조각도 넘어 보였다. 까맣게 숯불에 그을린 겉면과는 달리 속은 핑크 빛이었고 고기 위에는 굵은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요리 기술을 발휘해 장시간 꼼꼼하게 조리한 것이라기 보다는 노련한 직관과 경험으로 순식간에 구워 낸 야성적인 음식 같았다.

 

R과 나는 다시 한 번 포도주 잔을 들어 부딪히고 용감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큰 조각을 하나씩 가져다가 썰어서 동시에 입에 넣고 처음으로 씹는 순간 둘 다 눈이 동그래져서 또 한 번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육즙이 입에 퍼지면서도 쫄깃한 감촉이었고 고기를 씹는 맛이 최대한 살아 있었다. 한우나 미국 소고기 맛과 또 다른 맛인데 전혀 비리지 않고 양념이 일체 배제되어 깔끔한 소고기 그 자체의 맛이었다. 기름이 쪽 빠진 듯 느끼하지도 않고 잘 구워진 최상급 고기에 딱 소금 하나로 간을 한 오염되지 않은 맛. 마블링이 잘 되어 입에서 살살 녹는 연한 맛이 아니고 충분히 씹으면서 고기의 맛을 최대한 음미할 수 있는 거의 원시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맛. 그러나 먹으면 먹는 대로 육신과 정신에 영양분이 될 것처럼 큰 위안을 주는 맛과 느낌이어서 커다란 뼈에 붙은 붉은 고기 덩어리를 썰어 먹고 있는데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R과 나는 마치 딴 세상 스테이크 같은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그때 일본인처럼 보이는 아줌마 두 명이 새로 들어 왔다.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인들은 화려한 꽃무늬의 구찌 실크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서서 실내를 둘러 보고 있었다. 후덕한 웨이터가 또 한 번 ‘아름다운 숙녀들’을 안내했는데 우리 바로 옆 자리에 앉혀 주었다. 일본 부인들은 자리에 앉으며 ‘스미마센’ 하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스미마센’ 하며 내 가방을 치워 주었더니 일본 부인들은 우리가 일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려니 내 옆에 앉은 부인이 내게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데 아마도 주문을 좀 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해서 손을 저으며 일본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일본 부인은 ‘아!’ 하더니 우리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똑같은 것을 달라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일본어 액센트가 심한 영어였다. 언어의 천재 우리 웨이터는 일본어까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주문을 받아 갔다. 그러는 와중에 일본 부인들 옆 테이블에는 중년 프랑스 아저씨와 아줌마 커플이 들어 와 앉았다. 이제 하얀 멧돼지 선술집 안은 정말로 손님이 가득 들어 차고 있었다.

 

일본 아줌마들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부인이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하고 다른 부인은 전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부인은 일본 고베에서 왔는데 40년지기 친구라고 한다. 40년 전에 유럽 배낭 여행 중에 만나 그때부터 매년 함께 외국 여행을 하는 사이라고. R과 나를 보고는 모녀가 여행 중이니 보기 좋다고 말하며 특별한 여행이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 딸의 ‘영원한 봄’을 위해 피렌체에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를 보러 왔다고 대답했다. 영어하는 부인이 친구에게 일본말로 통역해 주자 친구가 ‘아!’ 하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번에는 일본 부인들의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가 나왔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