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홈으로 종교
이시노마키에서 보내 온 편지
05/20/19  

”진정한 인간애 실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

 

일본 이시노마키는 만화의 도시이다. 가면라이더, 사이보그 009 등의 만화로 유명한 이시노모리 쇼타가 이곳에 만화박물관을 설입하면서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만화 애호가들이 찾아온다. 이시노모리 쇼타는 이시노마키 인근의 토메시가 고향이다.

 

이시노마키는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최대 피해를 입은 도시이다. 주민 3,700여 명이 사망하고 만화박물관을 비롯해 도시 내 거의 모든 건물들이 파손되거나 물에 잠겨 아직도 완전한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는 지금도 신경쇠약, 우울증 등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시노마키의 가장 큰 가설 주택 단지의 경우 주민 약 2500명 가운데 250명가량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자살자도 증가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이시노마키 주민들을 위해 한국의 한 선교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이시노마키 지역 주민들은 매우 폐쇄적이어서 타지역, 타국민에게 매우 배타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곳에서 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에 나선 조영상 선교사를 돕기 위해 대한성공회의 석광훈(모세) 신부가 동참하고 나섰다. 석 신부는 종파를 떠난 인간애 실천의 현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본보에 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석 신부가 보내온 편지 전문이다. <편집자 주>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산리쿠 연안 해저에서 거대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앙은 도호쿠 오시카 반도 동쪽 70km지점이며 진원지는 수심 29km지점이었습니다. 지진의 규모는 리히터 규모로 9.1로 일본 근대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자 1900년 근대적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로 4번째로 강한 지진이었습니다. 지진 발생 후 강력한 쓰나미가 해안 도시들을 덮쳐 15,894명이 사망했고 도시는 폐허가 됐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이시노마키는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입니다.

 

동일본대지진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도시는 아직도 완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언제 무너질지 모를 건물들이 출입금지 푯말을 단 채 위태롭게 서있고, 주민들은 정신적 충격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영상 선교사는 이런 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위해 이시노마키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조그만 일이라도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묵묵히 실천하는 조 선교사에게 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조 선교사는 그렇게 조금씩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2016년 11월에는 쓰나미로 반파된 편의점 건물을 매입해 ‘오아시스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했던 약 3억 원의 경비는 국내외의 모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오아시스교회’와 조 선교사의 거주지는 일본교회에 헌납돼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음악회나 공연, 재활용품 판매, 먹거리 나눔의 장을 엽니다. 또 자원봉사 지원 창구로도 사용됩니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의 전초기지가 된 것입니다. 조 선교사는 지금도 재해를 입은 현지인들에게 작은 평화를 전하며,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조 선교사로부터 이시노마키 주민들의 현실을 전해 들은 저는 망설임 없이 이시노마키로 달려갔습니다. 이곳에서 조 선교사를 도와 ‘오아시스교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성서공부와 설교 이외에 서투른 운전과 교회 정원 돌보기, 텃밭 가꾸기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아시스교회’에 등록된 신자는 현재 19명입니다. 매주일 오전10시30분 주일예배를 드리고 매주 수요일은 10시 성서공부, 매주 토요일 8시에 산상기도회를 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아시스교회’의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저처럼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 운영 자금을 지원해주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 운영에는 매달 12만 엔 정도가 소요되지만 교인들의 헌금은 월 2~3만 엔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후원자들의 손길로 채워집니다.  

 

재해를 당한 사람들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들을 위한 봉사와 섬김에는 종파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모습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2019년 5월 15일

석광훈 신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