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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리젠시 카페2
04/23/18  |  조회:203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리젠시 카페 2
 
R 과 나는 음식을 받아 와서 즐겁게 먹기 시작했다. 커다란 흰 접시에 반숙한 계란, 소시지, 베이컨, 콩이 푸짐하게 담겨 있고, 해시 브라운과 구운 토마토가 덤으로 얹혀져 있다. 토스트는 노릇노릇하고 파삭하게 완벽히 구워져 나왔다. 커피 못지 않게 진한 홍차가 목으로 넘어가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우리가 먹기 시작할 무렵에는 손님들이 꽉 차서 줄이 식당 밖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먹다가 다른 사람들은 뭘 먹나 궁금해서 다른 테이블을 살짝 넘겨다 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트 브랙퍼스트를 먹고 있었다. 또 거의 대부분이 해시브라운을 추가했는데 미국과는 달리 삼각형으로 튀겨진 해시 브라운은 정말 맛있었다. 버터에 구운 버섯을 추가한 사람들도 있다. 버섯은 까맣게 구워져 나오는데 맛있을 것 같았다. 또 한가지. 블랙 푸딩을 추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블랙 푸딩은 돼지의 피와 곡식 등을 넣고 만든 소시지 종류인데 일종의 순대같은 음식이다. 영국 사람들이 매우 사랑하는 전통 별미라고 해서 시도해 볼까 했으나 나는 원래 순대를 못 먹어서 포기했다. R은 한 번 먹어 보았다고 한다. 맛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찐득찐득한 식감이 영 불편하다고 한다.  
 
음식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저 맛만 보고 많이 남기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예상 밖으로 다 먹게 되었다. 계란은 완벽한 반숙이고, 베이컨은 미국식 베이컨 같이 비계가 많은 것이 아니라 거의 얇게 썬 햄 같았는데 아주 짜고 맛있었다.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쩐지 이 햄은 짜지 않으면 맛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토마토 소스에 요리한 콩이 아주 맛있었다. 미국식 베이크드 빈 (Baked beans) 같은 스타일인데 전혀 달지 않고 포근한 맛이다. R은 런던에 처음 와서 이 집에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어 본 후에 콩이 너무 맛있어서 두 달 동안 매일 아침에 콩만 먹었다고 말했다. 콩은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캔으로 나오는 것을 사서 데워 먹는 것이 제 맛이라고 한다. 먹성 좋은 우리는 베이컨과 소시지를 다 먹고, 토스트에 계란과 콩을 얹어 접시까지 싹싹 다 긁어 먹었다. 
 
영국식 아침 식사는 왜 그렇게 양이 많은 것일까? 미국식 아침 식사도 양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영국식 아침 식사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다. 영국식 아침 식사는 양이 많은 데다가 기름지고 칼로리가 엄청나다. 만약, 아침 식사를 매일 이런 식으로 한다면 언젠가는 동맥이 막혀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추운 날 잿빛 거리를 걸어 와 이 오래되고 소박한 식당에서 과묵한 영국 사람들과 어울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뜨거운 홍차를 마셔보니 왜 이런 아침식사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원래 옛날 영국사람들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식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 늦게 티 타임을 가지면서 요기를 하고 저녁은 먹지 않거나 아주 늦게 먹거나 했다고. 추운 날씨에 점심식사 없이 하루를 견디려면 아침에 이렇게 든든하게 먹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치 전쟁터에서 일용 양식을 배급하듯 돌아가는 리젠시 카페의 모습과 분위기는 전후 런던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공습으로 무너진 런던의 폐허를 복구하며 다시 힘을 내야했던 영국인들에게 영양가 높고 따뜻한  아침식사는 필수적이지 않았을까? 인내심 많은 영국인들은 이렇게 든든한 아침을 뜨거운 차와 같이 먹고 길고 힘든 하루를 견뎌냈을 것이다. 
 
나오는 모든 음식이 아주 기본적이고 평범했지만 하나하나 정성 들여 완벽히 요리된 리젠시 카페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영국 문화의 또 한 면을 펼쳐 보여주는 듯 했다. 전후 런던의 분위기까지 아련히 암시하는 식당 안의 모습도 정겹고 재미있었다.
 
“우리 아마 5천 칼로리쯤 먹었겠지?” 푸짐하게 하도 많이 먹어서 얼굴까지 부어 오른 듯한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슬슬 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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